"사랑으로 요리하고 희망으로 팔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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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요리하고 희망으로 팔아요"
  • 승인 2001.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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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 내려 3번 출구로 나와 서울대학병원을 지나면 친한 사람들끼리 음식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기를 바라는 안동 퓨전찜닭 전문점 ‘친친(親親)식당’이 나온다. 이곳엔 특별한 이야기 꺼리가 있다.
음식점 입구엔 ‘종로 시니어클럽은 노인들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위해 보건 복지부로부터 지정된 공식 기관이며 친친 사업을 통해 나오는 수입금은 어르신들의 경제적인 자립을 위해 쓰여집니다’라는 글귀가 먼저 눈에 띤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면 이 식당의 지배인 김용기 씨(60세)가 빨간 조끼에 나비 넥타이 차림으로 손님을 맞는다.

교회 주차장을 개조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깨끗하고 고풍스러운 인테리어. 요즘 젊은이들의 감각에 맞춰 깔끔하고 멋스러운 식당 분위기에 비해 이 곳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은 환갑을 넘긴 노인들이다. 음식 조리에서 홀 서빙까지 갖가지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종업원이 노인들이다. 이것이 친친(親親)식당만이 갖고 있는 첫 번째 이야기 꺼리다.

더 이상 허름한 옷차림으로 껌을 팔지 않아도 되고, 주유소에서 기름때 묻은 옷을 입지 않아도 된다. 고된 일로 생계를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열한 명의 환갑을 넘긴 종업원은 ‘희망’이라는 글자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평생 직장을 얻은 이들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을 다시 한번 누리고 있다. 싫어서 나가지 않는 한 누구도 쫓아내지 않는 최고의 직장이자 삶의 터전을 얻었다. 모두가 주인이다. 그래서 이 식당의 주인이자 종업원들은 이곳을 찾는 손님들과 ‘사랑’, ‘기쁨’이라는 선물을 함께 나누기를 바라고 있다. 이 식당의 두 번째 이야기 꺼리다.
갓 한 달 넘긴 새내기 식당임에도 불구하고 친절하고 맛있다는 소문이 주위에 알려지면서 손님들이 줄을 잇고 있다. 아침 10시30분부터 저녁 8시30분까지 10시간의 중노동에도 불구하고, 미소로 손님을 맞는 이 곳 종업원은 철도 공무원으로 30여 년을 보내고 정년 퇴직한 김용기 씨를 비롯해 이창희 씨(65세), 박상분 씨(70세) 등 열한 명이 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찜닭의 본가 안동에서 1주일간 연수와 2개월의 고생 끝에 만들어 낸 맛이 있다.
감자, 당면, 고추, 파 등 갖은 양념과 어우러진 친친(親親)식당만이 자랑하는 찜닭은 그냥 단순히 돈주고 사먹는 그런 음식맛이 아니다. 그 음식속엔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만이 낼 수 있는 ‘사랑의 맛’이 녹아있다. 그리고 밝게 웃는 노인 종업원들의 미소가 이 집 최고의 자랑거리다. 이것이 세 번째 이야기 꺼리다.
토요일 오전 11시30분부터 밀려들기 시작한 손님들은 20석을 가득 메우며 오후 1시까지 계속해서 이어졌다.
5~6명씩 두팀으로 나눠 격일제로 일하고 있는 친친식당은 재료비와 운영비를 뺀 나머지 수익금 중 일부를 제2, 제3 친친식당을 위해 적립하고 있다. 지난 한달 수익금은 1천2백만원. 개인이 운영하면 짭짤한 수익이지만 열 한 명이 나눠 갖기엔 그리 많은 금액은 아니다. 그렇지만 열한 명의 종업원은 불평하지 않는다. 그리고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자립과 자활을 꿈꾸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것이 네 번째 이야기 꺼리다.

이렇게 수많은 화제를 낳고 있는 친친(親親)식당은 보건복지부가 노인 자활을 위해 시작한 시니어클럽 사업을 대학로교회가 운영권을 얻으면서 시작됐다. 시니어클럽은 노인들 스스로 일자리를 마련하고, 공동경영, 공동노동과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을 원칙으로 설립된 협동조합형 노인자활공동체. 다시 말하면 일하고 싶은 노인들이 힘을 합쳐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공동체다.

현재 성공회가 운영하는 종로를 비롯해 불교의 육영재단이 운영하는 대구시니어클럽, 삼육재단이 운영하는 동해시니어클럽, 사회복지관이 운영하는 부천과 충주시니어클럽 등 전국에 5곳.
이런 시니어클럽이 대학로교회로부터 주차장을 식당 장소로 제공받기까지 남모른 역경을 겪기도 했다. 교인들은 “교회에서 장사를 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며 반대했던 것. 그러나 지성희 신부는 좌절하지 않았다. 3개월 간 한 교인 한 교인을 찾아다니며 설득하고 협박(?)하면서 교인들로부터 승낙을 받아냈던 것이다. 지금도 주차장을 잃은 교인들은 불평을 버리지 않고 있다.

종로시니어클럽 담당 사제인 지성희 신부는 “이 곳은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가는 노인들의 자활과 자립을 돕는 데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사회 참여의 기회를 늘려 주는 데 목적 있다”고 말했다. 지 신부는 “고령자의 취업과 생활 안정을 위해서 좀 더 적극적인 정부의 정책 수립과 그 정책을 수행하는 일선 기관의 유기적이 업무협조체제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고령화 시대에 대한 대비나 준비가 소홀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사람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노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젊어서부터 서서히 노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교회가 노인정책을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안목에서 다시 짜야만 합니다”
종로시니어클럽 관장인 박경조 신부도 시니어클럽을 통해 우리가 당면한 노인 문제를 풀어 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앞으로 종로시니어클럽은 노인들을 위한 상담 공간으로서의 마로니에 쉼터, 삶의 여가를 위한 숲 안내인 사업, 원예 치료에 중점을 둔 농장 사업, 가정복지를 위한 간병인 사업 등의 자활 협동 공동체 사업을 중심으로 노인층의 자립 자활을 도울 계획이다.

차가운 바람에 몸이 움츠러드는 겨울. 지금 대학로에선 할머니 할아버지의 정성이 가득 담긴 찜닭 한 그릇에 먹는 이의 추운 몸도 녹아들고, 만들어준 노인들의 세상을 향한 얼어붙은 마음도 봄눈처럼 녹아 내리고 있다.

송영락기자(ysong@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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