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에는 죽는 사람 없기를 간절하게 기도하고 소망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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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에는 죽는 사람 없기를 간절하게 기도하고 소망해요”
  • 현승미
  • 승인 2008.10.15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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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서 노숙자 급식 사역하는 나눔공동체 원장 김해연 사모

“올 여름이 너무 더웠잖아요. 그래서 벌써부터 다가오는 겨울이 걱정입니다. 여름에 그렇게 더우면 겨울 역시 반드시 엄청난 한파가 몰려오거든요. 올 겨울에는 정말 죽는 사람 없기를 간절하게 기도하고 소망해요.”

많은 이들이 선선해진 가을날씨를 만끽하며 즐거워하는 지금 때 아닌 겨울 걱정을 하는 이는 다름 아닌 나눔공동체 김해연사모. 혹여나 노숙자들이 추운 날씨에 밤새 동사에 걸리지는 않을까 벌써부터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김해연사모는 남편 박종환목사(나눔선교교회)와 함께 벌써 10년 가까이 서울역에서 노숙자 사역을 해오고 있다.

“남편과 함께 서울역을 지날 때면 항상 볼 수 있는 풍경이 바로 여기저기 허름한 모습으로 흩어져 있는 노숙자들의 모습이었죠. 그저 익숙한 풍경이고 안쓰럽다는 심정이었지 그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하나님이 그들을 달리 보게 하신 계기가 있었어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남편과 함께 서울역 광장을 가로질러 가던 김해연사모 앞에 허름한 옷을 입은 한 할아버지가 다가왔다. 할아버지는 두 사람을 붙잡고 컵라면 하나만 먹게 해달라고 사정했고, 가까운 가게에 가서 작은 컵라면 하나를 사드리게 됐다.

 
“남편과 함께 그 분이 컵라면 드시는 모습을 바라보게 됐어요. 컵라면에 물을 부어드리자마자 채 익지도 않은 그 라면을 정말 정신없이 드시더라고요. 너무 마음이 아파서 컵라면 하나를 더 권해드렸죠.”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본 후 집에 돌아왔지만, 김해연사모는 웬일인지 그 할아버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결국 며칠동안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 할아버지를 위해, 노숙자를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그저 일상의 한 부분으로 여기며 지나치던 그 모습을 마음에 담게 해준 하나님의 뜻을 위해 며칠을 금식하며 기도하게 됐다.

“기도 끝에 서울역에 가서 보니 너무 많은 노숙자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누워서 자는 사람, 취한 사람, 행인들에게 손 벌리는 사람, 정말 너무 많고도 안타까운 다양한 사연들의 사람들을 보게 됐어요. 집으로 돌아와 다시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랜 기도 끝에 당시 교회를 개척해 일반목회를 하고 있던 남편 박종환목사에게 조심스레 노숙자 사역을 제안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기도 했지만, 김해연사모나 그를 바라보는 박목사에게는 큰 모험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김해연사모는 어린시절부터 친구 집에 놀러가도 쉽사리 자리를 잡고 앉지 못할 정도로 깔끔이 몸에 배여 있었다. 그런 그의 성정을 이미 알고 있는 가족들과 박종환목사는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결국 부부는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고, 오랜 고민 끝에 서울역 노숙자들을 위한 급식과 복음사역을 시작하게 됐다. 예배 드리고 급식까지 하기에는 많이 부족한 공간이었지만, 상가 2층에 작은 공간을 얻어 사역을 시작했다.

“노숙자들은 오랫동안 밖에서 생활하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니까 저 멀리서부터 코를 찌르는 듯한 고약한 냄새가 풍기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고슴도치도 제 자식은 예쁘다더니 신기하게도 그 냄새가 나지 않는 거예요. 음식냄새며 다른 냄새는 다 나는데 노숙자 특유의 냄새만 사라졌어요.”

가끔 자원봉사를 위해 오는 청년들도, 예배를 주관하기 위해 초청받아 오는 목회자들도 그 노숙자 냄새만큼은 어쩌지를 못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유독 김해연사모의 코를 막아 주셨다.

그렇게 작지만 아담하고 따뜻한 공간에서 컵라면으로 급식을 시작했다. 서울역 광장에 나갈 때는 컵라면으로, 안에서는 봉지라면을 끓여 밥 조금과 함께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말씀을 나눠주었다. 처음에는 정기적인 후원자도 없어 일주일에 세 번 하는 급식도 힘들어 때론 밀가루로 수제비를 만들기도 했다. 매일 내일 먹일 급식에 대한 걱정을 해야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그들의 기도를 외면치 않으셨다.

“하나님 앞에 매일 멸치, 감자, 오이 등을 놓고 기도했어요. 늘 그들을 굶기게 될까봐 걱정했지만,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멸치며 밀가루며 저희의 필요를 채워주셨지요.”

급식 한번에 24개들이 8박스가 소비되던 시절이었다. 주머니를 그야말로 ‘탈탈’ 털어 노숙자들을 먹일 수는 있었지만, 부부의 차비가 없어서 서울역에서 노량진을 지나 한강을 건너 상도동 집까지 걸어가기도 했다.

“그렇게 1년 여 사역 후 하나님께서 밥을 지을 수 있는 쌀을 주셨어요. 마치 뱃속에 아기를 배고 열 달 돼야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저에게 인내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 것 같아요. 정말로 제가 이 사역을 할 수 있을지 1년 동안 여러 가지 연단을 통해 제 중심을 보신거죠.”

처음 컵라면으로 시작해 일주일에 세 번 하던 급식사역을 이제는 쌀로 밥을 지어줄 수 있게 됐고, 화요일을 빼고 6일 동안 그들에게 밥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차비가 없어 집까지 걸어가야 했고, 당장 내일 급식비를 걱정하고 심지어 살던 집까지 줄여가며 나눔공동체 사역을 위해 내놓았지만 그들 부부의 사역은 쉬지 않고 계속됐다.

내년이면 그 사역도 10년. 2년 전부터는 박종환목사가 소속돼 있는 합동정동 교단 목회자들과 노회의 크고 작은 후원사역이 계속되고 있고, 청년부부터 여전도회, 권사회, 집사회 등의 자원봉사활동도 꾸준히 지속되고 있다. 노숙자 사역도 결실을 맺어 단순히 예배 드리고 급식지원뿐만 아니라 인격적 관심과 사랑을 통해 자활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해주고 있다.

“이미 노숙자 중에 집사가 세 분이나 나왔어요. 집사가 되면 자활할 수 있도록 리어커를 사줍니다. 그럼 폐지도 줍고, 빈병도 줍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적게나마 돈을 벌고 추위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쪽방이라도 얻을 수 있게 되지요. 십일조도 꼬박꼬박 낸답니다.”

노숙자들을 굶길 수 없어 지난 9년여 동안 여행은커녕 제대로 한 번 쉬지도 못했다는 김해연사모. 지치고 힘들 때면 혼자서 서울역에 나가 지금은 집사가 된 그 노숙자들의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면 다시 힘이 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관심과 도움의 손길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안 먹고 살 수는 없는 일이기에 매일 부족하고, 아쉬움이 남는다. 요즘 김해연사모의 기도제목은 노숙자들에게 겨울동안만이라도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재작년에 시청 지하에서 동사로 3명이나 죽었어요. 지금 예배드리고 급식하는 공간 윗층에 2층 침대 30~40개정도 깔고 그들을 재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다만 겨울동안만이라도 추위를 피할 수 있게 해주고 싶어요.”

결코 쉽지 않는 10년 노숙자 사역을 해왔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김해연사모. 부족하고 가진 것이 없지만 그동안 채워주신 것처럼 하나님이 또 다른 기적을 보여주실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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