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된 하나님의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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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된 하나님의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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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10.01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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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목사<의왕중앙교회>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전쟁에서 골리앗을 물맷돌로 쓰러뜨려 그 전쟁을 승리하게 하므로 왕 사울보다 더 높은 인기를 얻은 다윗에게 돌아온 것은 사울왕의 견제와 질투였다.

다윗은 백성들의 추앙을 받을수록 곤혹스러운 날들을 보내야만 했다.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음 받아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된 사울을 향하여 불타는 심정으로 사모하고 존경하는 다윗의 마음과 상관없이 사울은 다윗을 광야로 내몰았다. 어이없는 결과다.

하나님의 훈련이 시작된 것이다.

하나님의 훈련은 보편적으로 이해와 설명이 불가능하다. 은혜를 받고 감격하는데 현실을 뒤흔드시기도 하시고, 믿음을 발견하고 온전히 주께 드려 헌신을 다짐하는데 주님은 그것을 순탄하게 하지 않으신다. 철저하게 실패로 내몰아 인간 ‘나’를 깨뜨리신다.

모세도 그랬다. 민족의식이 고양되어 내가 처한 현실에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자각하고 고민하여 주먹을 불끈 쥘 때, 하나님은 모세를 광야로 내몰아 처절한 인생의 실패를 안겨 주신다. 그리고 무심하신 듯, 아무런 관심도 없고 잊어버린 듯, 그냥 광야에 40년을 버린 인생처럼 살게 하신다. 모세는 처절한 실패 앞에 눈물을 삼켰을 것이다. 애굽 궁전의 40년은 무지개 같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좌절과 허무를 되씹었을 것이다.

하늘을 보고 울었을까? 땅을 치며 분노 했을까. 황무한 광야를 맥없이 양떼를 몰며 얼마나 많은 세월을 아파했을까? 그의 가슴은 얼음처럼 차가워지고, 사명은 사라졌으며 자신의 오만을 자책하고, 자신의 무능함을 충분히 되씹을 시간을 주신다. 그리고 새로 태어나게 하신다.

양떼가 보이고 그 양떼와 아내와 자식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지난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서야 그에게 평안이 오고 온유함이 찾아든다. 하나님의 훈련의 결과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위하여 훈련시킬 당신의 사람들을 훈련소에 어김없이 입소시키신다. 이들은 하나님의 계획된 훈련 시간표대로, 때로는 자신이 훈련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영문 모를 훈련을 받는다.

하나님은 실패의 훈련을 통하여 나를 깨트리신다. 잔인하고도 혹독하시다. 하나님은 ‘나’라고 하는 자아를 용납하지 아니하신다. 철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기까지 훈련하시되 고삐를 늦추지 아니하신다. 그리고서야 전장에 내보내셔서 고난도의 주의 일을 하게 하신다.

특별한 훈련을 군에서 받은 일이 있었다. 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훈련을 통해 사람이라는 자각을 빼내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살의로 온몸을 불태우면서도 삶의 이유나 목적을 상실해버렸다.

절망이 분노를 낳고 그 분노가 내일이 없는 하루하루를 소망 없이 살아가게 했다. 소망을 지우고, 기대를 버리는 그것이 훈련이었다. 분노로 충천했다. 그것은 공산당과 김일성에 대한 분노였다. 나를 혹독하게 훈련시키는 그 교관도 조교도 그 비감스런 현실도 다 김일성으로 클로즈업되었다. 그것은 의도된 훈련의 성취였다.

하나님은 의도된 훈련을 감행하신다.

좌절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그러나 계속되는 실패,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의도된 하나님의 사람은 만들어 진다.

철저하게 자신을 깨트려 부정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주의 말씀에 순복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는 훈련이다. 요셉도 모세도 다윗도 하나님의 훈련소를 수료한 사람들이다. 모두가 한결같은 하나님의 사람들로 빼어난 믿음의 용장들이다.

다윗에게는 시대를 뛰어 넘는 다윗에게 걸맞은 준걸한 용사들이 여럿 있었다. 그 중에 대표적인 장수가 요압이다. 요압은 빼어난 무장으로 다윗에게 충성스런 장수다. 하지만 그는 결정적 순간에 다윗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했다. 성경은 그것을 놓치않고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요압같은 장수를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훈련소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자. 실패가 있는 시련을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시기 때문이다. 다윗도 모세도 그렇게 만드셨다. 요즘세대의 젊은이들처럼 우리 모두가 엄살을 심하게 부린다. 훈련을 거부하기도 하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부르짖는다. 우리의 결국은 요압이상 그 무엇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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