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ㆍ변화와 구원을 요청하는 개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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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ㆍ변화와 구원을 요청하는 개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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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9.24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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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목사<서초교회>

 

일본의 기독교 역사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어느 학교에서 학생 50명을 대상으로 ‘당신은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는가?’라는 설문 조사를 했다. 그랬더니 ‘천주교’라고 응답한 학생이 30명, ‘불교’라고 응답한 학생이 40명, ‘개신교’라는 학생이 15명, ‘일본의 전통 종교’를 신봉한다는 학생이 42명이었다.

응답한 학생 수를 합해보니까 전체 학생 수의 두 배를 훨씬 넘었다고 한다. 전체 학생 수가 50명인데, 질문에 응답한 숫자는 그 두 배를 훨씬 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떤 학생은 두 가지 이상의 종교에 대하여 응답을 한 셈이다. 학생들이 장난으로 그랬을까? 그렇지 않다고 했다.

그들은 진지한 자세로 그렇게 대답을 했다고 한다. 진지하고 심각한 자세로 두 가지 이상의 종교에 대해서 응답한 것이다. 만일에 우리 한국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그건 참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그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한다.

종교는 좋은 것이니까, 하나만 가질 것이 아니라 두 개나 세 개씩이라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천주교 선교 초기에 이런 일이 있었다. 로마 가톨릭의 선교사가 일본에 처음 들어갔을 때 일본의 종교는 불교를 비롯한 여러 우상이 혼합된 분위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선교의 어려움을 느낀 로마 가톨릭 선교사들은 불교와 적극적으로 타협한 듯이 보인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도 불교의 용어를 많이 빌려서 사용했다.

천주교 신부에 대한 명칭으로서는, 불교의 스님이라는 의미의 승(僧)이라는 한자어를 사용했다.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에 대해서는 불교의 해탈이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구약의 율법에 대해서는 불법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불교와 비슷한 용어를 사용하면서 천주교의 스님이 불법과 해탈을 전했다면 그런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지 궁금하다.

그렇게 쉽게 편하게 접근하면 복음 선교가 잘 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기독교 역사는 우리보다 훨씬 앞서 있지만 선교의 열매는 아주 적은 편이다. 일본의 기독교는 그야말로 소수단체로 남아 있으며, 때로는 어용단체 비슷한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

의도적으로 타 종교를 공격하거나 비판할 필요는 없다. 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타 종교인들과 의도적인 갈등을 만들 필요는 없다. 천재지변이 나서 구제활동을 할 때는 서로 도울 수도 있다. 그러나 타 종교인들이 전하고 가르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며, 하나님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땅에 전파되며, 성령의 역사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게 한다’는 복음의 핵심에 있어서는 타협이나 양보가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개신교는 독선적으로 보일 가능성이 많다.

그렇지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장 6절)고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그 점을 강조하다가 “당신은 독선적이다”라는 비판을 받았다면 우리는 기뻐하고 감사해야 한다. 나 같은 사람도 복음과 진리로 인하여 비난당하고 고난당할 수 있다면 그처럼 감사한 일이 없는 것이다.

요즘처럼 종교 간의 구분이 희미해져가는 시대에는 나 자신의 영적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 교회와 세상 사이 구분이, 진리의 말씀과 거짓된 가르침 사이 구분이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한 시대라 생각된다.

복음은 죄악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사명을 지닌 것이기에 개방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복음의 개방성은 회개와 변화와 구원을 요청하는 개방성이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이방인들의 개방성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종교다원주의적인 개방성과 성경적 복음의 개방성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 다르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하는 것은, 거짓된 가르침에 대한 폐쇄성이 되는 동시에 진리의 하나님을 향한 개방성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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