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속의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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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 속의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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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7.16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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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인목사 <예장통합 기획국장>


“세상의 수많은 색깔들, 우리의 생각에도 다양한 색깔이 있다. 생각의 색깔을 섞어봐.”라는 광고 카피가 있다. 생각의 색깔을 섞으면 마치 그림물감의 색깔을 섞어 더욱 아름다운 색깔을 만들 듯이 더 좋은 생각들이, 더 조화로운 결정들이 생겨나지 않을까하는 희망을 품게 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인간들은 참 하잘 것 없는 한계의 산물들이다. 시간의 한계, 공간의 한계와 더불어 능력과 인식의 한계까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한계를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한계라면 바로 우리들의 사고의 한계, 편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우리들의 편견으로부터 시작된 죄 된 역사가 우리들을 일깨워준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여성과 어린이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차별이 만들어낸 문화라는 이름의 굴레들, 인종차별이 만들어낸 인류역사의 가장 아픈 기억, 노예제도, 그리고 자본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수없이 많은 억압들이 그것이다. 거창하게만 느껴지는 인종차별에 근거한 노예제도도 알고 보면 아주 간단한 편견으로부터 시작한다. 우리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은 우리보다 열등하다는 편견이다. 여성은 남성보다 못하다는 단순한 편견이 출발이 된다.

편견은 우리들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그 편견을 정당화하는 이론을 만들어내고,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제도를 강력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오랫동안 노예제도는 존속해왔고, 아직도 여성들은 차별을 없애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의 우리 주변에는 편견으로 말미암은 사건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에 대한 대 내외적인 반응과 대응이 그렇고, 최근 방영되었던 SBS TV 특집, “신의 길, 인간의 길”의 내용과 그에 대응하는 기독교의 방법이 우리들의 편견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한다. 특별히 지난 6월 29일부터 7월 13일까지 4회에 걸쳐 SBS에서 방영한 이 프로그램은 종교 간의 대립과 갈등과 오해를 해소하고 화해의 길을 찾는다는 명분으로 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제작의 의도에 담겨있다고 보여지는 기독교 역사와 교리에 대한 편견을 일방적으로 소개하는 것으로 당사자인 기독교인들에게 큰 상처를 주는 결과를 가져왔다. ‘일반화’(generalization)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매우 위험한데, 특별히 편견을 일반화하는 것은 극도로 조심스러운 내용이 아닐 수 없다.

기독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종교들은 이론이나 학설로 표현할 수 없는 개개인과 집단의 영적인 경험과 신앙의 고백을 그 근간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한 가지 잣대로 신앙을 잴 수도 없을뿐더러 역사적이라거나 사실적이라는 학설로 종교전체를 희화화해서는 안된다.

기독교 신앙을 일방적으로 비판한다고 해서 타종교와 대화의 길이 단숨에 모색되지도 않을뿐더러 오히려 언론 매체에 대한 불신의 벽만 높아질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슬람과 기독교간의 오래된 갈등을 단순히 기독교의 교리와 역사와 전통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으로 풀 수 없는 것처럼 어느 누구의 편견을, 일방적인 주장을 강력한 매스미디어의 힘으로 몰아 붙여서는 그 어떤 문제도 풀릴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편견을 넘어서서 다양성 속의 일치를 찾아가는 길에서 우리사회의 소통의 가능성이 생길 것이다.

일치를 이루기위해서는 다양성을 먼저 인정하고 우리의 편견을 포기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다양성 속의 일치를 이루기 위하여는 우리 모두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소통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SBS의 제작진이나 기독교인들 모두가 이번문제를 보다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객관적이라는 말이 무조건 상대방의 의견이나 입장을 수용하는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각자의 다름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가운데 일치를 추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기독교인으로 바라기는 이세상의 어떤 갈등과 대립도 기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한걸음 더 나아가 교회는 이 땅에서 평화의 사도로서의 역할을 엄중히 감당할 것을 요구한다.

한편, 대중매체의 권력남용으로 벌어지는 어떠한 사회문제에 대하여도 분명히 그 폐해를 지적할 것이다. 다양성 속의 일치가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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