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의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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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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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7.0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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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 목사 <서초교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베들레헴 마굿간에서 탄생하셨고,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서 목수의 아들로 성장하셨다. 그리고 삼십대 초반에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지켜보는 앞에서 참혹한 십자가 처형을 당하셨다. 그 고난과 희생을 생각할 때 우리 시대의 성직자들이나 기독교인들은 그런 예수님과는 거리가 먼 듯이 보인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 존경 받기 어려운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라 생각된다. 고난과 희생의 삶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육신을 지닌 사람이기에 물질의 유혹에 넘어갈 수 있고 윤리적인 문제로 지탄 받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근원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방향을 바라보며 살아가는가 하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서 이런 특징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옳은 길을 걸었는데 그들은 희생되고 말았다. 아벨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올바른 제사를 드렸는데 가인의 돌에 맞아 희생되고 말았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광야 40년을 걸었는데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었다.

세례 요한은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외쳤는데 헤롯의 칼에 희생되고 말았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을 향하여 열심히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의 칼에 최후를 마치고 말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런 길을 걸어갈 수 있겠는가?

옳은 길을 걷다가 희생당한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게 된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희생제물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순종의 본을 보이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다.

선교지에 가서 러시아정교회를 찾아갈 때가 있다. 그들의 교회에 가보면 촛불을 들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수님이나 사도 바울의 그림 앞에서 촛불을 켜놓고 기도하는 것이다. 처음 그 촛불기도를 보았을 때는 거부감을 느꼈다. 그런데 촛불기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나서 나도 이제 그들의 교회에 갈 때면 촛불을 켜놓고 기도한다.

동방교회의 촛불은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촛불은 자신을 태우는 동안에 어두움을 밝히며 빛을 발하는 것이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의 생애가 촛불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 동방교회의 신앙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불태우는 동안에 어두운 세상을 향하여 진리의 빛을 밝히신 것이다.

그리스의 어느 시인은 우리 인생을 ‘기나긴 촛불의 행렬’에 비유했다. 그 시인은 그리스정교회 안에서 수많은 기도의 촛불들을 보고나서 ‘촛불의 행렬’이라는 시어(詩語)를 생각한 듯하다. 앞서간 그들의 기도와 함께 다 타버린 작은 토막의 초들이 줄지어 선 모습을 보면서 시인은 우리가 지나온 인생과 역사를 아름다운 시로 말하고 싶어 했다.

심지가 다 타버린 초의 작은 토막들이 길게 줄지어 선 것처럼 지나간 날들은 우리들 뒤에 제각기 서글픈 모습으로 남아 서 있다. 지금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 그 촛불들 모두가 처음에 불을 밝힐 때는 열심히 자신의 꿈을 노래하며 환한 빛을 비추었을 것이다. 그렇게 열심히 타다가 이제는 서글픈 흔적들만이 길게 줄을 지어선 그 모습을 인생과 역사에 비유하면서 그 시인은 ‘촛불의 행렬’을 노래했다.

요즘 이 나라의 촛불은 결코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다. 지금 이 나라의 촛불은 미움과 분노와 정치적인 갈등을 태우는 듯이 보인다. 희생적인 것이 아닌 공격적인 촛불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이 촛불의 심지가 다 타버린 흔적들이 역사의 어느 모퉁이에 서 있을 때 쯤 장차 다가올 어느 역사가와 시인은 관대한 마음으로 노래해야 할 것이다. 역사의 가슴 속에 품고 함께 살아야 할 우리의 것이기 때문에 미움과 분노의 대상이 아닌 포용과 관용의 대상으로 시화(詩化)해 가야 할 것이다.

위대한 하나님의 종들은 자신이 먼저 희생제물이 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일을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촛불들이 소리를 지르는데 그리스도를 닮은 희생의 촛불은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희생의 촛불을 밝혀야 할 하나님의 종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가? 진리의 등불을 켜서 어디에 감추어 놓았는가? 성공과 욕망의 등불만 켜느라고 희생과 사랑의 촛불은 다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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