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태풍으로 고통받는 미얀마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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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태풍으로 고통받는 미얀마 (上)
  • 정재용
  • 승인 2008.06.19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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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미얀마를 위한 구원의 방주 되길


“그늘 한 점 없이 잠든 어린 자식의 더위를 식혀주며 잠을 재워주던 고마운 바람이 삽시간에 강풍의 살인마로 변해버린다면... 또 그 광경을 보고도 자식의 죽음을 바라만 봐야했다면... 바람에 날아가지 말아달라고 밧줄로 꽁꽁 묶어두기까지 했었는데...” 공포영화에서나 연출될 것 같은 장면이 지난 5월 3일 미얀마에서 벌어지고 말았다.

30여만 명의 사망자와 300만 명 이상의 이재민을 만들어낸 태풍 나르기스. 한 달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미얀마의 강물에는 시체들이 떠다닌다.

곳곳에는 집체만한 뿌리를 가진 나무부터 앙상한 나뭇가지들까지 바람에 쓰러지고 뒤엉켜 당시 태풍의 위력과 처참함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었다.

가난에 찌든 미얀마 사람들에게 집이라고는 논 위에 대나무를 박아 나뭇잎을 지붕 삼은 것이 전부였는데 나르기스라는 녀석은 ‘그것도 집이냐’고 비웃는 듯 모두 허물고 지나갔다.

인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미얀마의 군사독재정권을 향해 하나님께서 큰 벌이라도 내리셨던 것일까. 하지만 미얀마 군부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국민들이 죽어서 강물에 떠내려가든지 집도 없이 사경을 헤매든지 ‘탄센’이라는 통치자는 권력만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며, 법 같지도 않은 법을 개정하기 위해 국민투표까지 강행하는 최악의 인간미를 보여줬다.

‘악마 같은 인간들이 지배하는 나라를 도와줘야 할까’하고 잠시 망설여보지만 예수님께서는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내 몸처럼 사랑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은 한국교회의 발걸음을 미얀마로 향하게 했다.

한국교회희망연대(상임대표:이철신목사, 이하 한희년)와 함께 지난 9일 삼림이 국토의 절반이상이라는 보석의 나라 미얀마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인도양에 접했으니 파란빛일까? 삼림이 울창하니 초록빛일까? 보석의 나라이니 에메랄드빛일까? 다양한 상상을 해봤지만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미얀마는 푸르지만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푸른 나무들마저도 흙탕물에 검게 비춰 금방 탁한 색으로 변해버리고 만다. 나르기스가 휩쓸고 간 상처들은 우기의 장맛비로 인해 다시 한 번 온 나라를 흙탕물에 빠뜨려 침울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어디를 봐도 흙탕물 없는 마른 땅을 찾아보기란 쉽지가 않다.

그래도 희망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미얀마에 발을 디디게 했다. 인권 없는 국가라는 치부를 드러내길 거부하는 군인들의 검문을 몇 차례 통과하며 여섯 시간이 걸려 도착한 피야폰(PYAPON)지역 아웅다야 마을. 버스를 금방 삼켜버릴 듯 한 크기의 나무뿌리는 바닥을 드러내며 옆으로 누워있고 살랑바람이라도 불면 금방 쓰러질 것만 같은 집들과 거리에 나앉은 마을 주민들은 마치 제2차 세계대전의 한 장면을 찍기 위한 헐리우드 영화의 셋트장을 연상시켰다.

시속 190km의 강풍.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불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전기가 귀한 나라에서 달빛에 의존해야 할 밤 10시에 14m 높이의 홍수가 발생했다는데 꼭 그렇게 불어야만 했을까?

결국 대나무집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나무를 끌어안고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발버둥 쳐보지만 나무뿌리는 뽑혀버리고 등에 업고 있던 자식은 나무기둥을 붙들고 씨름하는 사이 바람과 함께 날아가 버렸다.

낮에 결혼식을 올린 새 신랑은 코코넛 나무에 매달려 신부의 죽음을 멍하니 바라봐야했다.

한 아버지는 부인과 자식들이 모두 떠내려가고 있는데도 격해진 파도와 바람을 원망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눈물만 쏟아냈다.

참 슬프다. 듣고만 있어도 바라만 보아도 눈물이 아니 흐를 수 없다. 그래도 희망을 찾기위해 발걸음을 했으니 ‘주여! 이 땅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라고 기도를 해본다. 어쩌면 미얀마의 군부들보다 더러운 죄인일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가방 속에 성경이라도 담아온 기독교인이기에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우리를 통해 전해질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희망이 생긴 것일까. 아니 어쩌면 이보다 더 큰 희망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국민의 90%이상이 불교신자인 불교국 미얀마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면 그것이 희망일 것이다. 한희년이 쌀 100가마니와 기름, 의약품을 들고 들어간 아웅다야 마을. 1800명이 사는 이 마을은 300채의 집이 완파되고 32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구호품을 전하기 위해 마을사람들이 의지하고 있는 절을 찾았는데 주지 승려는 “사람을 살리는 일에 종교의 다름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며 “언제든지 자주 와서 도와주면 좋겠다”고 했다.

만나기를 꺼리던 장관도 만날 수 있었다. 피야폰(PYAPON)지역의 재난을 담당하고 있는 소나잉(SOE NAING)장관. “미얀마에서 한국 드라마가 굉장히 인기가 좋다”던 그는 “자신도 드라마 때문에 한국을 좋아한다”며 마음의 문을 열었다. 언제 만나기를 꺼렸냐는 듯 지역의 재난상황을 혼자 한 시간 가까이 설명하며, 한국교회에서 왔음을 전해도 전혀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으며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고받자고 제의했다.

쓰나미가 와도 해마다 태풍이 와도 다른 나라, 다른 종교의 도움은 받지 않겠다던 미얀마. 단지 나르기스의 피해가 커서 그들의 마음이 열린 것은 아니다.

미얀마는 한국보다 복음이 100년 먼저 들어갔던 나라다. 또 25년 전 평신도 선교사였던 인관일 선교사가 들어가 현재 86개의 교회를 세우고 2개 신학교에서 6회 졸업생을 배출하고 120명의 현지 사역자들을 양육하고 있다.

13년 전부터는 선교사들이 한두 명 더 들어가게 돼 현재 57명의 선교사들이 양곤지역을 중심으로 고아원과 학교사역에 열정을 쏟아 붓고 있다.

이들의 미얀마를 향한 사랑과 선교의 열정, 개척정신을 보며 노아의 방주가 떠올랐다. 정신이 나갔다고 사람들이 비난했지만 때가 이르러 말씀을 이루시겠다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켰던 노아. 미얀마의 선교사들도 이런 노아의 믿음으로 작은 방주를 하나씩 만들어나가고 있다.

이것이 미얀마의 희망이다. 군사독재의 나라, 인권상실의 나라, 가난과 아픔의 나라, 하지만 그들은 곧 복음을 받아들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피가 우리에게 자유함을 주었노라고 고백하게 될 것이다.

너무나 처참했으나 나르기스로 더 크게 열린 미얀마를 향한 복음의 길. 예수님께서 한국교회를 향해 “마음과 뜻을 모아 미얀마를 구원할 더 큰 방주를 예비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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