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칼럼 - “청소년들에게서 희망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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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칼럼 - “청소년들에게서 희망이 보여요”
  • 승인 2001.11.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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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심장 같고 새벽 이슬 같은 청년들과 울고 웃으며 생사고락(?)을 함께 해오고 있는 필자는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요즘 청년들에게서 희망이 보여요?” 그러면 “물론이지요”라고 대답한다.

사실 희망이 없으면 무슨 낙(樂)으로 이 길을 갈 수 있겠는가. 남들이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미래에 대한 보장도 없고, 그렇다고 지역교회를 사역하는 목회자들처럼 안정된 수입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청년 사역자의 삶은 정말 이름도 없고, 빛도 없는 무명 사역자의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고집하는 이유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같은 청년들의 가슴마다 피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민족과 세계의 지도자로 세우고 싶은 희망 하나 때문이다. 때문에 청년 사역자들은 ‘절망’이라는 단어를 가장 싫어한다. 대신에 ‘희망’이라는 단어를 가장 좋아한다. 들에 핀 풀꽃처럼 온갖 풍상(風霜)을 겪으면서도 청년 사역의 현장을 지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부산의 한 캠퍼스에서 사역하던 때 일이니까 벌써 오래 전 이야기다. 하루는 전도를 하기 위해 캠퍼스 이곳 저곳을 걷고 있는데, 한 학생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절망한 모습으로 혼자 벤치에 않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다가가서 특유의 전도 접근 대화로 그 학생의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법학과에 다니고 있던 그 학생은 고시반에 들어가기 위해 시험에 응시했다가 낙방을 해서 낙심한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그를 격려한 후에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했더니 순수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이렇게 시작된 그 학생과의 만남은 매주 성경을 공부하는 영적 아비와 자식의 관계가 되었다. 하루는 성경공부를 해야 하는데 너무 피곤했다. 그래서 그 학생에게 4영리로 전도하는 법을 간단하게 전수하고는 직접 실천해보라고 했다.

그 학생은 정원수를 손질하던 아저씨에게 가서 복음을 전했다. 그런데 잠시 후 난처한 얼굴로 내게 도움을 요청했다. 4영리 9페이지의 두 그림을 설명하던 중 그 아저씨가 자기의 마음속에는 부처가 앉자있다고 했다면서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왔다.

필자는 너무 어려운 전도상대를 만났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권했더니, 그는 한 여학생에게 다가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조금 있으니까 이번에는 머리를 긁적이며 내게로 왔다. 또 무슨 일인가 하고 물었더니 “간사님, 하나님이 인도했습니다”라고 말한다.

그 학생 뒤에는 전도를 받은 여학생이 눈물을 흘리면서 서 있었다. 사연을 들으니 그 여학생은 고등학교 때까지는 교회를 다녔는데, 몇 년간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있다가 복음을 제시받고 예수를 영접하고 너무 감격해서 울었다는 것이다.

필자가 필리핀 단기선교를 떠날 때는 고개를 푹 숙이고 “간사님, 주 안에서 절대 평안!”, “주 안에서 절대 긍정!”이라는 인사말을 하면서 쑥쓰러워 하던 그 학생이 사람 낚는 어부가 되고, 또 다른 학생을 제자로 삼아 양육하는 열정과 헌신의 작은 목자로 성장한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특권은 청년 사역자만이 맛보는 기쁨과 보람이 아닐까.

오늘도 나는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설레임으로 청년사역의 길을 걷고 있다 ‘청년이 희망이다’ 라고 고백하면서….

김철영목사(C.C.C 총재특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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