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을 닫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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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을 닫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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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5.28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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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돈 교수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5월은 찬란하다고 한다. 생명이 무르익고 초록이 명암을 달리하며 아름다운 꽃들로 자연을 장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5월의 햇살은 덥지도 아니하고 아직 즐길 만하며 그 바람은 자연의 향내를 듬뿍 담아 향기롭기까지 하다. 오월은 모두에게 기쁨을 전해주는 축제의 달이다. 그래서인가 5월에는 기념일이 모여 있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 그리고 스승의 날까지 축복된 한 달 동안 기쁨과 감사를 나누어야할 날들이 많다. 거기에 더해 보면 노동절도 있고 부부의 날도 있다. 오월 한 달은 매주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감사해야할 날들로 채워져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우리에게 오월은 때로 잔인한 달이기도 하다. 선생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할 스승의 날에 선생님들은 학교를 못 온다.

그날을 맞아 과도한 감사의 표시로 사제지간이 무너질까 두려워서 학교마다 재량껏 그날을 봉쇄한다. 평생 기억에 남을 학생과 선생님과의 추억이 어쩜 그렇게 아이들의 기억에서 편집되어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어린이날과 어버이날로 멍드는 가슴도 있을 것이다. 교회마다 가정의 달이라고 하는데 깨어진 가정을 부여잡고 있는 사람들은 그 말씀들이 가슴의 상처로 꽂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의 사랑을 특별히 받아야할 그 날에 보듬어줄 부모가 없고 특별히 존경과 사랑을 받아야할 어버이날에 찾아오는 자녀가 없는 부모의 마음이 오죽하겠는가. 특히 과거의 상처로 인해서 부모와 만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텐데 그들에게 이 날들은 어떠할까. 그리고 이혼가정도 이제 적지 아니 할 텐데 이들에게 이 한 달은 어떤 의미일까.

문득 이 가정의 달이 잔인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가정은 과거와는 분명 다른 의미가 되어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이전과 같이 한 핏줄이고 내 새끼라는 동물적 본능도 아니고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살아야하는 숙명도 아닌 것이 되고 말았다. 부부를 이루는 것이 부모의 손을 떠나 당사자들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졌듯이 이제는 이혼도 당사자들의 선택이 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이다 보니 부모와 자식의 연도 조건과 상황에 따라 선택되어지고 있다. 때로 나의 연약함이 부모를 잊어버리게 하고 불편함이 자식의 도리를 잊게 한다.

더구나 마른자리 진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신다던 부모님이 자신들 이혼한다고 내어 버린 아이들이 아동복지시설에 24%를 차지하고 있다고 하니 참 세상이 변한 건지 인륜이 버려진 건지 모르겠다.

아마 이것이 오월의 갈등인 것 같다. 무너져 가는 가정을 세우기도 해야 되겠고 이미 무너진 가정에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도 주지 않아야하는 것이다.

부모 손잡고 교회에 오는 행사도 중요하지만 손잡고 올 부모가 없는 아이들도 교회에 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는 법이다.

하나님이 세워 주신 것 인간이 끊을 수 없다지만 벌써 끊어 놓은 것 아니라고 해 봐야 마음에 상처만 주게 된다. 도대체 오늘 이 가정의 달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전에 자주 다니던 국밥집이 있었다. 그 집 주인 아주머니가 해주신 명언이 있다. 자기는 형제들 만나면 키우는 강아지 얘기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형제들도 강아지를 한 마리씩 키우기에 관심사도 맞는다는 것이다. 안 그러면 자식들 이야기 자꾸 하게 되는데 아무리 형제고 조카지만 서로에게 씁쓸한 마음만 남기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들은 강아지 얘기만 한다고 하는데 내 마음에 지혜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이제 가정의 달에 이렇게 강아지 얘기나 해야 되는 것은 아닌지. 참 세상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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