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의인이 고난을 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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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의인이 고난을 받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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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4.23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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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근목사<이수중앙교회>

죄 중에서도 가장 뿌리 깊은 죄가 시기심이다.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린 것도 형들의 시기심 때문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중에 누가 “나는 시기와 질투심에서 자유 할 수 있다.”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이 시기심과 질투심에서 자유롭지 못해 가지고는 인생을 평안히 살수는 없는 일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뒤집히게 되고, 결국 자신의 행복은 깨어지고 만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이 시기와 질투의 뽕나무 뿌리를 뽑아 바다에 던질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말이다. “질투나 분노 같은 파괴적인 정서는 다른 사람을 해치기 전에, 나 자신을 해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요셉이 어떻게 이처럼 무서운 시기심과 질투심에서 자유 할 수가 있었는가?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그의 사랑을 믿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악까지도 선으로 바꾸사 우리를 축복하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가 요셉에게서 배워야할 놀라운 진리가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내 인생이 밑바닥까지 굴러 떨어진다 하더라도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언제나 한결같이 성실하게 사는 일이다. 선을 행하다 낙심치 말 것은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다. 요셉은 가는 곳마다 인정을 받고 승리했다. 보디발 장군 집의 총무가 되었을 때다. 그 무렵, 요셉은 그의 일생에 가장 큰 위기를 맞게 된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의 옷을 붙잡고 나와 동침하자”고 매달렸다. 그녀의 유혹은 끈질겼다. 요셉이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해 냈는가? 그가 끝까지 그녀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첫째는 이것이 얼마나 무섭고 큰 죄인가를 알았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주인을 배신할 수가 없었다. 셋째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지켜보시는 면전에서 이런 일은 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요셉의 혹독한 시련은 계속 되었다. 그는 보디발 아내에 대한 강간의 누명을 씌고 시위대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 감옥생활이 10년 넘게 계속되었다. 왜 의인이 이토록 무서운 고난과 시련을 겪어야하는 것일까? 의인이 고난을 받고 참아야 진리가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의인이 죄인처럼 죽어야 죄인이 구원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알았기에 요셉은 결코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감옥에서도 요셉은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았다. 그는 결국 당대 세계의 중심이었던 대제국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난 13년 동안이나 계속된 고난은 그를 큰 인물로 길러내는 훈련소요, 인생대학이었다. 그가 죄 없이 의인으로써 겪어야했던 눈물겨운 고난은 자기 형제들을 죄악에서 구원해내는 속죄의 눈물이었다.

요셉이 끝까지 형들을 용서하고 화해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믿었기 때문이다. 요셉이 형들에게 할 일은 다만 끝까지 사랑하는 일이었고, 끝까지 용서하는 일이었다. 내가 형들을 미워하고, 내 손에 피를 묻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니, 필요하면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용서하는 일 뿐이다.

사죄와 용서의 극치가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닌가? “이 악한 시대, 이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깨끗한 의인이 대신 고난을 받아야하고, 대신 죽어 주어야 한다. 요셉처럼 만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죄 없으신 예수님이 대신 고난 받으시고 죽으셨다”는 것이 스데반 집사님이 증거 한 설교의 핵심이었다. 여기에 의인이 고난을 받아야하는 이유가 있다. 지난  주가 4.19였다.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오늘의 번영은 4.19 학생들의 희생과 순국선열들의 의로운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믿는다. 이것을 잊지 말고, 우리도 항상 의롭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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