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상기목사<예수로교회>
목회와 목계 (牧會와 木鷄)
잃어버린 것이 많은 허전한 마음들이 대부분 교인들의 총선이후의 감상 일게다. 따는 작금이 예수를 정치적 메시아로 사모하든 이스라엘의 사회적 상황이나 진배없으니 말이다. 공명을 쫓다보면 공의를 잃어버리고 정치를 쫓다보면 정의를 잃어버리고 합리를 쫓다보면 진리를 놓친다. 민심이 천심이라 하지만 하나님 말씀이 진리고 천심이다. 명예를 쫓다보면 자신을 잃고 금권을 쫒다보면 자체를 잃고 정욕을 쫒다보면 자존을 잃는다. 영성이 곧 현실성이다.(spirituality is reality) 목회의 기본과 본질에 충실하면 세상은 교회 때문에 변한다.
교회와 목회는 하나님의 뜻과 질서를 기본으로 하는 목자와 양들의 본업이다.(boundary) 사랑에 계명이 있듯이 목회(牧會)도 목계(牧戒)가 있어야한다. 복음은 자유하는 율법이다. 목회의 기본과 본질을 벗어나면 아무리 화려한 열매가 있어도 그것은 세상의 숲일 뿐이다. coram Deo는 자신과의 대면이(Spiritual warfare) 곧 하나님과의 대면임을 성찰해야한다. 영력은 타인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 투계(鬪鷄)는 장자의 달생편(達生篇)에 나오는 ‘나무로 깎아 만든 닭`이다.
『닭싸움을 즐기는 왕이 투계조련사인 기성자에게 최고의 싸움닭을(鬪鷄)키우라고 명한다.
급한 왕명을 받았지만 기성자는 닭이 `목계의 경지`에 오를 때까지 서두르지 않는다. 기본과 본질에 대한 조련에만 집중한다. 열흘이 지나자 조바심이 난 왕이 묻는다. "이제 닭이 싸울 수 있겠는가?" 기성자가 아뢴다. "아직 멀었습니다. 지금은 허세만 부리고 교만하며 제 힘만 믿고 있습니다." 또 열흘이 지나자 왕이 다그친다. 대답은 같다. "아직 안 됩니다. 다른 닭을 보고나 울음소리를 들어도 당장 덤벼들 것처럼 합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 왕이 재촉해도 기성자의 대답은 여전하다. "아직도 안 됩니다. 다른 닭을 보면 노려보면서 성난 듯이 합니다." 그 후 또 열흘이 지나서야 기성자가 왕에게 고한다. "이제 거의 되었습니다. 상대방 싸울 닭이 소리를 질러대고 덤벼도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나무로 만든 닭 같습니다. 이제야 투계(鬪鷄)로서의 덕목이 갖추어졌습니다.”
목회가 그래야 한다. 교회와 지도자가 그래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래야 한다. 아무리 약한 상대라 해도 경시하지 않고 아무리 강한 상대가 으르렁거려도 목계처럼 초연한 평상심을 유지하다 꼭 필요할 때 실력을 보여준다. 그게 진리요 복음의 능력입니다. 교회가 세상에 허장성세를 보이려할 필요도 없고, 세속적인 비난에 동요하거나 흔들릴 필요도 없다. 교회의 능력은 십자가이다. 목회(牧會)에 필요한 목계(牧戒)는 목계(木鷄)입니다.
지금은 간사함이 없는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요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