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특집]폭력과 우상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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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특집]폭력과 우상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알리지 말라
  • 이현주
  • 승인 2008.03.25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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핍박의 시대에 맞이하는 부활의 의미

 

 인본주의자들의 기독교에 대한 부정과 괘변 세계적으로 확산

 

2008년 부활의 아침,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려는 사람들의 분주함이 거대한 벽에 부딪혔다. “정말 당신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 믿느냐”는 질문들이 나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이 있다는 것과 예수가 부활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느냐”며 따지고 든다.

 
안티 기독교인들이 난립하는 지금, 교회는 안팎으로 위기에 처해있다. 내적으로는 하나님을 떠나 물신을 섬기며 ‘개인의 구원’에만 빠진 크리스천들의 오만이요, 외적으로는 교회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인본주의자들의 저항이다. 특히 인본주의자들의 강력한 도전은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난다. 문화적 현상뿐 아니라 과학과 정치, 경제분야까지도 기독교를 거부하며 인간본연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지난해 출판계에 파장을 일으킨 두 권의 책이 있었다. 김영사에서 출간한 ‘만들어진 신’과 알마에서 펴낸 ‘신은 위대하지 않다’가 그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책들은 미국사회에 무신론을 확산시키며 전통적 기독교에 반대하는 논리를 펴나갔다.

 
‘만들어진 신’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는 과학자다. 동물행동학과 분자생물학 등 폭넓은 지식을 자랑하던 그의 첫 저서인 ‘이기적인 유전자’는 저술가로서 도킨스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 과학자는 ‘만들어진 신’이라는 책을 통해 과학적 논증으로 기독교를 박멸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책에서 언급한 신은 유대교와 이슬람을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표적은 미국식 기독교였다. 근본주의에 가득 찬 미국식 기독교가 전쟁과 폭력을 일으키며 온갖 악행을 신의 이름으로 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도킨스는 종교의 사회적 기능을 비판했다. 그동안 종교가 강자에게는 지배이데올로기로 작용했으며 약자에게는 삶의 위로이자 희망이 되어왔다는 점을 모순으로 지적했다. 오히려 신이 사라진 이후의 사회가 더 희망적이라는 괘변까지 늘어놓고 있다.

 
철저한 인본주의로 무장한 도킨스는 “잘못된 믿음이 끊임없는 전쟁과 가난, 아동학대와 동성애자 인권침해 등 해악을 끼치고 있다”며 “역사적으로 너무나 많은 인간의 존엄성이 신 앞에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학자 다수가 인간의 뇌는 도덕적으로 행동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며 인간자체로도 충분히 희망적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만들어진 신’의 공존의 히트 이후 미국 출판시장에는 기독교를 비판하거나 무신론을 주장하는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도킨스의 뒤를 이어 화제를 일으킨 책이 바로 ‘신은 위대하지 않다’이다.

 
영미언론이 선정한 100대 지식인 가운데 5위에 오른 세계적인 정치학자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독실한 기독교가정에서 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종교에 대한 비판을 서슴없이 쏟아냈다. 히친스는 종교가 무도덕한 수준이 아니라 부도덕하다고 몰아 부쳤다. 십자군 원정과 아프간 내전, 이라크 전쟁 등 역사 속에서 일어난 많은 전쟁의 이면에는 종교말살이라는 위약이 도사리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히친스의 주장은 도킨스와는 다소 차별된다. 도킨스는 신 자체를 인간이 만들어냈다고 주장하지만 히친스는 종교를 등에 업고 자행하는 ‘악’이 더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평화롭게 전한 초대교회 복음전파와 예수님의 본성을 닮아야

 

놀라운 점은 이 두 권의 책이 한국에 소개되자마자 수개월째 베스트 10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들 중에는 “나의 짧은 신앙생활을 완전히 마칠 수 있도록 용기를 준 책”이라고 표현하며 기독교와의 결별을 선언한 사람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종교를 인간이 만들어낸 ‘아편’으로 취급한 것이다.
 
두 명의 저자는 “신이 없는 인간의 삶이 훨씬 유익하다”며 사람들이 홀로 존재할 수 있음을 부추긴다. 신에게 의존하지 않고도 양심적으로 도덕적으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한다.
 

미국의 근본주의적 기독교를 꼬집는 목소리나 한국의 배타적 기독교에 대해 반기를 든 안티기독교들의 여론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이미 기독교에 대한 비판과 모함은 예수님이 활동하시던 2천년 전에도 있어왔다.

 
할렐루야교회 김상복목사는 “교회의 위기가 없던 때는 없었다. 예수님도 손가락질을 받았으며 저희가 나를 미워한 것처럼 너희도 미워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고 언급했다.
 

교회가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1913년 고 이승만박사가 쓴 책 ‘한국교회의 핍박’에도 세상권력으로 기독교를 타파하려는 일본인들의 시도가 기록되어 있다. 일제가 105인 사건등을 조작하며 독립운동의 원천이 되는 기독교를 말살하려고 했던 역사가 이 책을 통해 정리 되어 있다.

 
그러나 부활절을 맞이하는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비난과 핍박이 있어왔을지라도 그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는 사뭇 달라졌다는 점이다.
 

죽을 수도 있다는 위험 속에서도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는 부와 권력과 힘의 상징으로 예루살렘 군중 가운데 나서신 것이 아니었다. 처음 이 땅에 오실 때와 마찬가지로 낮고 겸손한 모습으로 찾아오셨다.

 
체포 당한 후 로마 병사들의 채찍에 맞고 예루살렘 군중들의 비난을 받을 때도 예수님은 침묵으로 일관하셨다. 십자가 상에 돌아가실 때까지 예수님은 평화로운 모습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찾아가 ‘내가 살아났음을 전하라’고 명하신 것이 전부였다.
 

무리를 모을 수도 있었고 폭동을 일으킬 수도 있었지만 예수님은 폭력이 아닌 평화를 선택하신 것이다. 제자들 역시 조용한 가운데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며 고난과 고통을 감수했다.

 
타종교를 말살하고 나만의 기독교를 전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고, 권력을 통해 기독교를 확장하려 하지 않았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와 다른 점이다.
 

1913년 이승만대통령이 기록한 ‘한국교회의 핍박’에는 일제의 학살과 만행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 당시 신앙의 선배들은 목숨을 걸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당당히 죽음을 받아들였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다 같은 형제라는 인식으로 뿌리깊은 반상의 차별을 딛고 평등한 세상을 위해 마음을 모아왔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교회 안에서조차 서로 형제 자매됨을 인정하지 않는다. 교회의 크고 작음으로 신분의 차별을 두고 교회 안에서도 사회적인 직분으로 계급을 매긴다. 동일한 하나님을 믿지만 너와 나의 구원에는 차이가 있다는 계급의식이 교회 안에 팽배하다.
 
 평화와 평등, 사랑과 겸손으로 나를 넘어 이웃위해 기도해야
 

도킨스와 히킨스가 책을 통해 비판한 기독교의 악행에 대해 무조건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고 반발할 근거는 없다. 실상 기독교는 ‘신’의 이름을 팔아 부와 명예를 얻고 권력을 남용했기 때문이다. 개인의 구원과 축복만 받을 수 있다면, 다른 이웃들의 고난과 아픔은 외면해왔던 이기적인 신앙을 품고 있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얼마 전 열린 복음주의협의회 월례발표회에서 숭실대 김영한교수는 “이제는 교회가 개인구원에서 떠나 생명을 살리는 총체적인 선교를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론 생태계를 살리기 위한 발제중에 나온 것이었지만 “하나님이 당신만 구원하실 것”이라는 가르침을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은 당신과 타인 그리고 이 세상 모두를 구원하실 분”이라는 광의의 개념으로 복음을 전달하고 받아들여야만 이 땅에 평화가 머무를 수 있다.
 

최고의 영성 신학자로 손꼽히는 유진 피터슨은 자신의 저서 ‘부활’을 통해 “회개하고 돌아서라. 시끄러움, 오염, 혼란스러움, 비인간적인 효율성, 기술이 부추기는 조급증, 전문가들의 입장으로 인해 가지게 된 구경꾼의 자세, 공동체 의미를 축소시키는 자율성, 이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라”고 경고했다.

 
부활의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백성들의 무리 속에서 거룩한 땅위에 서 있어야 하며 세속의 짓밟음과 무시로부터 그것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발광에 가까운 이기적인 삶을 버리고 문화적 종교적 혼란을 털어내며 세상, 육체, 마귀라고 칭하는 것들로부터 돌아섬으로써 부활의 삶을 증진시키라”고 권고했다.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다”는 류의 온갖 비난과 유언비어, 모략이 가득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부활의 주님이 남겨주신 사명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는 것.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전쟁과 권력, 악행과 물질로서 ‘부활’을 알리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점이다. 예수님은 고난과 핍박이 따를지라도 ‘평화와 평등, 사랑과 겸손’으로 복음을 전하는 한 사람의 의인을 찾고 계신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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