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 내려놓고 '네팔' 섬긴 의사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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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 내려놓고 '네팔' 섬긴 의사부부
  • 정재용
  • 승인 2008.03.2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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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집 '나마스떼, 닥터양' 들고 찾아온 양승봉ㆍ신경희 선교사

어느 순간부터 한국교회 안에 ‘내려놓음’이라는 말이 하나님 기쁘시게 하는 삶의 키워드로 등장했다.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내려놓아야 내려놓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일까. 내 욕심 모두 채우고 조금 버리는 것을 내려놓았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욕심을 얼마나 버릴 수 있으며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운행하시는 대로 삶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을 실제의 삶을 통해 조금이나마 비슷하게 이해할 수 있게 돕는 선교사 가정이 있다. 바로 네팔의 산골짜기에서 14년의 삶을 의료선교를 통해 십자가의 사랑을 전하고 있는 양승봉ㆍ신경희 선교사 가정이다. 

14년 전 소위 잘나가는 의사로 승승장구하던 양승봉 선교사.

외과의사로 명성을 떨치며 대학교수의 길로 들어서기 직전 그는 의사면허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았다.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나누며 살아야겠다는 비전이 생긴 이후로 기도하면서 준비해왔기에 스스로에게도 어떠한 사역의 이유를 만들려하거나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선교의 여정. 네팔에서 14년을 보낸 이야기를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은혜의 이야기로 담아낸 간증집 ‘나마스떼, 닥터양’을 들고 잠시 한국에 들린 부부를 만났다.

 

# 부르심에 응답하기까지

“의과대학 시절 누가회(CMF)라는 선교단체를 통해 하나님께서 선교의 사명감을 주신 것 같아요” 언제 시작됐는지 모를 사명감이지만 선교에 대한 열망이 계속해서 뜨거워졌음을 전하는 양승봉선교사. 오랜 기간을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민의 시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꿈꿔오던 의대교수 자리 제안이 들어왔을 때 ‘교수직에 이름을 올리고 안식년으로 잠시 다녀오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고는 잠시 고민을 했었어요. 하지만 하나님 앞에 온전한 것을 드리지 못할 것 같아서 곧 포기했죠. 헌신해야 할 자리에 세상의 꼬리표를 달고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

그렇게 끝난 그의 결단 앞에 부모님의 서운함이 마지막 장애물로 남아있었다.

“8년 동안 부모님의 뜻에 어긋난 적이 없었던 둘째 아들 부부가 안정된 생활을 버리겠다고 하니 서운하셨던 것 같아요. 처음엔 며느리 탓을 하셨던 부모님께서 이제는 며느리의 선교 보고하는 모습에 후한 점수를 주시는 든든한 후원자가 되셨어요.”

동네 자랑거리였던 의사 아들과 명문대 나온 1등 며느리가 그렇게 곁을 떠났지만 이제는 전 세계의 존경을 받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우뚝 섰으니 14년 전 부모님 마음이 녹을 수밖에 없었다.

 

#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하나님

그렇게 떠난 선교의 여정. “섬기던 한국교회의 후원으로 뉴질랜드 바이블칼리지에서 본격적인 훈련을 받은 뒤 네팔로 들어갔어요. 우리 가족은 수도 카트만두에서도 버스로 열 시간은 들어가야 하는 산골짜기 병원에 정착하게 됐죠.” 전기도 없고 그나마 들어오는 전기는 불안정해서 가전제품 모두 고장을 내버렸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힘을 주는 세 아들 진모와 경모, 인모를 선물로 주셨고 든든한 동역자들을 허락하시며 함께 사역하시고 계셨다.

병리학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기무라와 수니타 부부. “어린아이들의 장난감을 고쳐주며 유독 소아병동을 사랑하던 일본인 부부였어요. 네팔에 최신 의료장비들까지 들여놓는 귀한 사역을 감당했던 분들이었죠. 하나님께서는 영혼을 치료하는 치과의사 로버트와 루스 부부도 보내주셨어요.” 가난한 이들의 육신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만져주기를 기도했던 부부들의 동역은 양선교사 부부에게 더 큰 힘이 돼줬다.

그뿐 아니라 작은 도움으로 건강을 회복하고 예수님을 만난 이들의 도움은 네팔에 정착해 의료선교를 하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아주 큰 힘을 부어주고 있다.

“버림받고 짐승 우리에 살던 크리슈나는 로버트와 루스의 양딸이 된 뒤 크리스티나로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어요. 네팔어 교사 인드라는 복음을 거부하다 지금은 열정적인 전도자로 변화됐어요.”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동역의 길을 걷게 하셨다.

 

# 자녀들에게 칭찬받는 부모

“양승봉, 신경희가 바로 네팔이에요”라는 칭찬. 그 어떤 누구도 아닌 고생을 시켜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는 세 아들들의 고백은 양승봉, 신경희 선교사부부에겐 가장 큰 감사이자 힘이 되어준다.

약대를 졸업하고 듬직한 사회인이 된 첫째 아들 진모.

“뉴질랜드에서 혼자 아르바이트하면서 열심히 공부해준 아들이 자랑스럽고 고마워요. 부유한 유학생들 사이에서 멋진 옷들도 맘껏 사서 입고 싶을 나이인데 친구들이 부럽지 않은가봐요. 너무 감사해요.”

부모로서 미안한 마음에 눈물이 글썽이지만 당당하게 멋진 인생들을 펼쳐가고 있는 세 아들을 볼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심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지 물어보면 “한국 의료계는 양승봉, 신경희가 없어도 잘 돌아가지만 네팔에서 나가시면 절대로 안 되요”라고 힘을 더하는 세 아들.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에 돈 많이 버는 의사 부모에 대한 미련은 전혀 없다.

 

# 14년동안 풍족함 얻어

“선교는 관계이고 영향력이라고 생각해요.” 양승봉선교사가 진료와 수술을 하는 동안 곁에서 참모역할을 하는 신경희선교사는 많은 난관을 지혜로운 결단으로 헤쳐 나가야 했다.

“주민들뿐 아니라 동역자들과 부딪힐 때도 많았어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내를 허락하셨고 기도하게 하셨죠.” 그리고 곧 모든 일들 가운데 더 큰 것으로 채워주심을 전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힘들었던 일들. 또 뜻하지 않게 우리 가족을 통해 큰일을 이루시는 기적을 체험할 때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부인할 수 없어요”

14년 전까지 누렸던 풍족한 의사의 삶. 고난의 시작이 될까 두려움을 각오했던 삶.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먼저 나의 나라와 나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리라”는 약속을 지키셨다.

네팔의 산골에서 전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가는 양승봉, 신경희 선교사. 두 부부는 14년 사역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은혜가 더 많은 부흥으로 다가서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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