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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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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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3.1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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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목사<서초교회>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실 때,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이라는 처소를 허락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다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말았습니다. 사탄의 유혹을 받아서 그렇게 한 것이다.

인간은 사탄의 유혹을 받아들였고, 하나님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다시는 에덴동산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고, 인간은 이제 자신의 힘으로 이 세상에서 처소를 찾아다녀야만 합니다. 인간들 모두가, 보다 나은 처소를 찾으려 하기 때문에, 처소의 문제는 끊임없는 경쟁과 갈등의 문제가 됩니다.

창세기 말씀에는,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갈등들이 나타납니다.

인간들 사이에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하고 복잡한 갈등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인간은 언제나 갈등을 만들어가는 존재입니다. 사람들 사이에 불화를 만들어내고, 자신이 잘못했으면서도 분노하고 증오하면서 모든 책임은 다른 사람에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그러한 갈등과 경쟁과 염려와 근심으로부터, 내가 이제는 벗어나겠다.”는 강력한 의사 표현이 됩니다… “그런 갈등이나 그런 염려 근심에, 내가 더 이상은 종노릇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분노와 증오와 원수 갚는 일…그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해결하셨으니, 이제 더 이상 나는 그런 일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요 결단인 것입니다. 그런 점을 생각할 때, 창세기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은 요셉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어두운 지혜를 꾸몄고, 유다는 돈을 받아서 주님을 팔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그 모든 인간들을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빌라도와 대제사장들을 포함하여,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고 소리치던 그 모든 사람들을 위한 죽음이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예수님을 죽인 그들을 위한 죽음이었다”는 것이 복음의 역설적인 내용입니다. “그는 나를 위하여 오셨는데, 나는 그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는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구원하러 오셨는데, 우리는 합력하여 그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부활하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분노나 증오나 보복에 대한 말씀을 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용서를 말씀하셨고, “서로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예수님을 닮았습니다. 어린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합니다. 그런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하던 요셉의 형들은 어느 날 요셉을 죽이려다가 멀리 팔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나타납니다.

‘요셉은 왜 자신이 그런 고통과 절망을 거쳐서, 애굽의 총리가 되었는지.’ ‘왜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만드셨는지.’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에게 보복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가족들 모두를 구하려고 합니다.

요셉은, 가족들 모두를 애굽으로 불러옵니다. 그렇지만 열사람의 형들은 염려가 되고 근심이 됩니다. 염려와 근심 중에 있는 형들을 향하여,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들이여! 당신들은 인간적인 시기와 분노의 감정으로 나를 해치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셔서, 이 부족한 나를 애굽의 총리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족 모두가 애굽으로 온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이만큼 번창하게 되지 않습니까?”

요셉은, 인간적인 분노나 보복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커다란 흐름 속에서, 과거의 모든 일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고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했던 사탄은, 우리의 정치 경제 종교 모든 일들이 갈등과 증오와 보복의 악순환 속에 머물러 있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새롭게 이 나라를 이끌어갈 기독교인 대통령과 요직을 맡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교회를 이끌어가는 목회자들에게는 갈등과 보복을 극복하는 요셉과 같은 믿음이 충만하기를, 종려주일과 부활절을 기다리면서 간절히 기원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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