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대담] 이영엽목사 "욕심을 버리고 회개할 떄 하나님의 부흥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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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대담] 이영엽목사 "욕심을 버리고 회개할 떄 하나님의 부흥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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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1.29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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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바름과 기독교의 새로움을 주장하고 있는 기독교정화운동 대표 이영엽목사는 세속적 가치에 의해 교회를 판단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은 오직 하나님께 있으며 교회가 세상적인 숫자로 하나님의 시간을 이용해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기독교정화운동을 이끌며 한국교회의 건강한 성장과 성숙의 과제를 제시해온 이영엽목사. 그는 2008년 새해 교회가 버려야할 것으로 물질적 풍요를 꼽았다. 풍요 뒤에는 나태와 안일이 따라 온다며 철저히 말씀에 거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흥을 허락하실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담 : 장형준 편집국장 | 2008. 1. 17 | 장소 : 반도중앙교회 당회장실


- 지난해 한국교회는 감격스런 부흥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목회 일선에서 이후 제2의 부흥기를 갈망하는 교회의 염원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합니다. 새로운 부흥 100년을 희망하는 한국 교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가요?
 

한국 교회의 부흥 100주년 기념이란 말 자체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말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인간과는 다릅니다. 인간의 시간개념으로 생각 할 때에 99년이면 어떻고 105년이면 어떻습니까? 다만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섭리의 시간이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크로노스가 아니고 ‘카이로스’라고 할까요? 너무 시간 개념에 얽매이면 하나님을 인간의 요구 속에 가두어 놓고 필요에 따라 강요하고 명령하는 꼴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에게 기도하고 구하라고 말씀을 하셨지만 중요한 것은 그 구하는 요체가 무엇이냐 입니다. 우리의 요구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다면 하나님께서 주저 하시지 않겠지요.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슬픈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요구하는 부흥이 무엇입니까? 표면상으로는 구원이라고 하지만 기독교의 제2의 융성입니다. 결국 우선 숫자의 증가입니다. 교회가 세력과 금전의 노예가 되면 결국은 망하고 맙니다.

우리가 지금에 와서 교회의 부흥을 원한다는 그 근본 취지에 대한 깊은 반성과 재고 없이는 하나님께서 부흥을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의 부흥이 다시 한번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전인구원의 염원, 영혼구원은 기본이고 현실에서의 인간구원을 염두에 두어 간절히 엎드려 간구하고 가슴을 쳐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한, 더욱 절실한 회개가 나로부터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때 우리는 희망을 걸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그 때 비로소 과거 회귀적 부흥이 아니라 21세기의 하나님의 방식대로의 부흥을 주실 것입니다.  

- 교회의 대형화·사유화에 대한 지적들이 많습니다. 목회 일선에서 보시는 교회의 건강성을 어떻게 평가하시는 지요?

교회의 대형화는 결코 유죄거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만 대형교회의 목회자가 훌륭해서만 교회가 크게 부흥된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인가 섭리가 있으셔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다만 대형화의 노선에 있는 교회들이 수평이동에 몰두만 않는다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형 교회들이 비난 받는 이유는 그 목회자의 윤리의식의 결여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든다면 과거 영락교회의 대형화는 모든 교회들의 선망의 대상이었고 존경의 모습이었습니다. 우스운 이야기로 제가 시골에 있을 때 한경직 목사님께 사신을 올린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교회가 목사님처럼 부흥이 되겠습니까?” 답장을 보내 왔는데 교회의 대형부흥을 탐하는 그 욕심을 회개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대가 바로서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부흥을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깊이 반성하면서 부끄러워 했었고 또 한편 놀란 것은 시골에 있는 가장 보잘것없는 종에게도 성실하게 답장을 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대형화, 사유화에 대한 지나친 신경질적 반응은 경제적 기준 위에서 평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 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구원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똑 같은 물질에 얽매인 시각에서 평가하기 때문에 잘 못된 평가가 나오는 것입니다. 교회가 크다고 재정적 부정을 반드시 자행하거나 작다고 반드시 투명하고 정직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교역자의 재정적 윤리의식의 결여는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도 시정을 요구하고 노력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작은 부분만을 문제삼아 침소봉대 하는 것은 한국교회의 이미지 손상을 위한 자극밖에 될 것이 없습니다. 목회의 영력과 리더십을 쉽게 매도해서는 않될 것입니다. 이 역시 하자가 발견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 한국 교회의 위상과 신뢰 추락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들이 있습니다. 교회가 사회와 국가의 희망이 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이 있어야 하겠습니까? 

오늘 한국 교회에 위상적 추락이 있다면 물질문화의 풍요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예부터 또는 교회사적으로 보면 항상 교회는 물질 풍요를 축복으로 보았고 그것을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물질이 풍요한 다음에는 나태와 안일과 일락이 교회의 믿음을 좀 먹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한국교회는 물질의 풍요시대에 들어 섰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이길 힘, 즉 요리 할 힘이 없습니다. 물질을 요리 못하면 그로부터 종교적 권력 지향의 의식들이 발달하고 명예를 탐하는 풍조가 일어나고 자기 주장이 강화되어 분파가 자행되며 이 때부터 나태, 일락, 호텔선호, 성의 문란, 미움, 합리화 등 각종 인간중심적 행위들이 판을 치게 됩니다. 회가 한국사회의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자기성찰과 자기 죽음의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다들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일반사회의 풍조가 교역자들을 잡아 가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깊은 회개가 각자 골방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고 생각 합니다. 핍박과 비난과 단절을 각오하고 골방에서 무릎 꿇는 결단이 없이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많은 종들이 지금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장로 대통령 선출과 새 정부 출범에 대해 거는 기대가 많습니다. 이를 등에 업은 탓인지 기독교정당 창당에 대한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옵니다. 교회와 정부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비판과 함께 기대가 많습니다. 교회와 정부의 관계, 어때야 할까요? 

오늘날 선진국에서의 민주주의의 원칙에 정교분리 원칙을 세운 것은 가장 현명한 정치원리적 조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원칙 하나만 고수해도 아무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근자에 저도 기독교정당 창당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습니다. 그런데 해괴 한 것은 국회를 복음화하겠다는 것이에요. 이는 분명히 국회로 하여금 기독교화 시키겠다는 발상인데 어불성설입니다. 국회를 전도하여 교화시키겠다면 개인 케이스가 될 것입니다. 국회의원 하나하나를 전도하여 기독교화 시키겠다면 장한 일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이름으로 국회혹은 정치를 교화시키겠다면 불가한 일입니다. 기독교는 종교이지 정치가 아닙니다. 물론 기독교의 윤리는 정치를 말하고 있지만 이는 일반 윤리의 원리와 같습니다. 구태여 기독교란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장로 대통령이 선출 됐습니다. 교회에서도 많은 기도가 있었고 기대도 있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제 당선이 됐으니 그것으로 끝내야 합니다. 교회단체들에서 축하기도회라 하여 여기저기서 우리의 대통령이다 하는 소아병적 행태를 나타낸다면 또 한번 기독교의 추태를 들어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대통령은 기독교의 대통령이 아닙니다. 전국민의 대통령이지요. 불교계의 대통령, 유교계의 대통령, 사회 각계각층 전 국민의 대통령이지요. 유독 기독교의 장로라 해서 특별히 가까운척 하면 대통령 자신에게도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국정에 혼선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이제 기독교의 장로가 대통령이 되었다면 한국 사회의 모든 이들을 포용하여 그들의 아픔과 불공평과 필요를 헤아리고 채워주는 대통령이 되도록 밀어 주는 것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중립적 태도를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게 나라를 위하는 일입니다.

새 정부에 바라는 점이라면 다만 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지나치게 공약을 의식해서 포퓰리즘에 기울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이제 교회는 절대 이기주의적 발상에서 줄서기에 바쁘면 안 된다고 생각 합니다. 나를 생각하기 전에 타인을 생각하는 그리스도적 사고로 정부가 정부답게 행정을 할 수 있도록 기도 해 주고 밀어주면 되고 때로는 채찍도 가할 수 있다고 생각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독교적 행보라고 생각 합니다.

- 한국교회의 상식과 바름을 위해 노력해 오신 기독교정화운동의 전망과 교회와 사회를 위한 구상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요. 

기독교 정화운동은 지금부터 14년전 1995년에 출발을 했고 큰 조직도 했습니다. 운동이라고는 했지만 사회운동이라기 보다는 비판적 언론운동이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언론 매체가 워낙 발달해서 물리적 운동을 안해도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귀 신문 같은 고귀한 언론들이 힘을 써주시니 감사할 따름이고 향후 기회가 되는대로 계속해서 의견을 발표 할 것입니다. 다만 이런 발표는 기도 중에 생각을 얻는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저의 특기는 엎드려 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하나님의 생각을 전하려고 애쓰는 것 뿐입니다. 위로부터의 의견을 받아 피력 하도록 많이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정리=이석훈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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