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더기 옷을 입고 오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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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더기 옷을 입고 오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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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2.20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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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익목사<신촌성결교회>


미국의 어느 교회에서 성탄절을 맞아 고등부 학생들이 연극을 준비했다. 연극 연출교사가 연극에 나오는 배역을 학생들에게 배당하였다. 그 아이들 중에는 지진아 학생이 하나 있었는데 아이들은 그 학생에게 배역을 맡기면 연극이 실패한다고 모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 아이를 빼버리면 얼마나 실망할까 생각하고 학생에게 조연급인 여관집 주인역을 맡겼다.


성탄절 발표당일 일찍부터 성도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연극은 무르익었다. 마리아와 요셉은 애타게 방을 구하고 다녔다. 마리아의 배는 불렀고 방은 없어 주인공들은 애타게 빈방을 구하고 돌아다녔다. 그때 지진아 학생은 현실과 연극사이 중간에서 왔다 갔다 하며 갈등을 겪었다. 그러다 마침내 울음을 터트리며 소리 질렀다. “우리집에 빈방 있어요, 우리 집으로 가요”. 순간 장내는 폭소가 터졌고 그날 연극은 엉망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연극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는 관객들의 얼굴에는 모처럼 보기드문 연극을 본 것에 만족해 하는 얼굴들이었다.

창조주 하나님이 누더기 옷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 가장 화려하게 가장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시간에 그야말로 본데있게 세상에 오셔서 호령하시고 군림하시고 영광받으셔야 할 하나님께서 가장 조용하게 누구도 알지 못하는 시간에 가장 누추한 곳으로 누더기 옷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다. 스스로 종의 삶을 사셨다.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고 각종 병자들을 눈물의 손으로 고치셨고 죽은 자들을 살리셨다.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셨으며 소망을 잃고 살아가던 수많은 당시 민중들에게 소망과 비전과 꿈과 기대를 주셨다.

하나님 창조주께서 결국 피조물들로부터 심판을 받고 버림을 받아 마침내 죽임을 당하였기에 인간은 더욱 초라해지고 무지함에 치를 떨어야 했다. 누구보다도 섬김을 받아야 할 분임에도 가장 낮은 자들을 몸소 발을 닦으시고 섬기심으로 우리 인간의 자존심이 더욱 상하게 되었다. 이 땅의 군왕들의 화려한 황금으로 치장한 옷들이 모두 빛을 바래 버리게 하셨고 그들로 하여금 부끄럽게 만드셨다.

왜 그러셨을까. 왜 다 포기하시고 스스로 천한 자의 자리로 전락하여 섬기시고 누더기 옷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마침내 비참하게 죽으셨을까. 모두 사랑 때문이다. 그냥 사랑이 아니고 철두철미한 희생의 사랑 때문이다.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 손이 모르도록 발휘하신 그 극란한 사랑 때문이다. 그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를 누가 헤아리며 그 깊이를 잴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시는 그 심정을 짤막한 한마디 메시지로 선포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 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

한해가 저물면서 우리는 또 다시 성탄절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리는 또 누더기 옷을 입고 세상에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금년 성탄절에는 주님이 또 다시 거처할 방이 없어 이리 저리 헤메는 일이 없도록 우리 모두 진솔한 마음으로 우리들 집의 따뜻한 방으로 모셔 들여야 하겠다.

이 땅의 헐벗은 사람들, 누더기 옷을 입고 이 겨울에도 추위에 떨어야 하는 우리의 이웃들을 품는 마음이 주님을 내 집으로 모셔들이는 마음들이다. 현실을 분간하지 못해서 연극시간임에도 “우리집에 방이 많으니 우리집으로 가요”하고 울음을 터트리던 그 아이의 심정으로 성탄절을 맞이하자. 그 마음이 성탄을 맞이하는 마음이고 그 마음이 얼어붙은 이 시대를 녹일 수 있는 주님의 마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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