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교회 아니면 남남 ‘개교회주의 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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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교회 아니면 남남 ‘개교회주의 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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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1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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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봉호박사<동덕여대 총장>

한국교회가 잃어버려서 안타까운 것이 여럿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하나가 신자들과 교회들 간의 친밀한 유대감이다. 과거에는 예수 믿는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고, 다른 교회를 돕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였다. 50년대 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이웃에 어려운 교회가 있으면 자기 교회 못지않게 도우려 했다. 자기 교회 지붕이 새는데도 이웃에 시작한 개척교회에 연보를 하는 것이 그렇게 특이하게 보이지 않았다. 이웃교회 예배당 건축에 자원 봉사하는 일이 예사였다. 다른 교회가 부흥한다면 모두들 기뻐했다. 비록 자신들의 교회가 아니라도 하나님의 나라가 흥왕하고 복음이 잘 전파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인들, 교회 간에는 그런 유대감이 거의 사라지고 있다.

물론 배타적인 유대감은 위험하다. 불신자들과 다른 종교 추종자들을 백안시하거나 적대시하는 것은 다원주의와 관용정신을 중요시하는 오늘날 그 자체로도 비신사적이지만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도 그렇게 지혜롭지 못하다. 특히 분파주의적인 소수 집단들에게 전형적인 배타적 선민사상이나 종교적 우월감은 위험하고 하나님의 영광에도 도움이 되지 않다.

그러나 진정하게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는 사람들이라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가 형제자매란 인식을 갖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다른 사람에게 무례하고 불친절하지 않아도 가족끼리 친밀감을 가지는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들 간의 친밀감이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기독교인의 수가 늘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이 그렇듯 흔하면 귀하지 않게 된다. 과거 극소수였던 신자의 숫자가 지금은 전 인구의 18%에 이르렀기 때문에 “천에 하나, 만에 하나”란 표현은 사실과 다르다. 그러니 신자들 사이에 특별한 유대감이 생겨나기가 어렵다. 그러나 아직도 비기독교인의 숫자가 절대적이고 최근에는 기독교에 대해서 적대적인 사람들이 늘어나는 상황이므로 주 안에서 형제자매란 인식이 강하지 않다는 것은 안타깝다.

숫자가 많아졌기 때문에 유대감이 약해지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다 하더라도 또 하나의 다른 원인은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대로 작용한다. 즉 한국 교회에 심각한 개교회주의다.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 간의 친밀감은 거의 사라지고 그 대신 같은 교회 교인끼리의 유대감은 더 강해지는 것이다. 다른 교회 교인에 대한 감정은 비 기독교인에 대한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남남”이 되고 있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하나로 만든다는 생각보다는 “우리 교회”가 우리를 형제자매로 만든다고 느끼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보다 “우리 교회”가 더 중요하게 부상하는 것이다.

안디옥 교회는 그 교회에서 가장 뛰어난 지도자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했다. 자기 교회보다 복음전파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에 그렇게 할 교회가 한 교회라도 있겠는가? 다른 곳에 가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지금보다 훨씬 더 큰일을 할 수 있는 일꾼이라도 기어코 “우리 교회”에 남아 있어야 하고, “우리 교회”에 골칫거리가 있으면 다른 교회로 보내 버리려 한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 나라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백성이고 같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란 친밀한 유대감이 전제되어야 진정한 연합이 가능하다. 지금처럼 교단 간, 교회 간 자본주의적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는 형식적 연합이 전혀 힘을 발휘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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