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사회 윤리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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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사회 윤리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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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6.04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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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환목사<백석대 교수>


윤리란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와 규범으로 인륜도덕의 원리다. 어느 사회든 그 나라의 종교가 윤리를 상실할 때 사회 전체는 혼돈과 어두운 시대였다. 이것이 세계사의 증명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그렇다. 성경도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지금 우리사회의 악순환은 총체적 위기다. 그 중에서도 국민들의 윤리부재다. 가장 시급한 대처가 필요하다. 윤리가 회복된 사회는 건강한 사회다. 사회의 가장 기초는 가정이며, 가정의 기초는 부부이나 전반적인 가정 붕괴의 심화는 교회학교 사회전반의 악순환으로 연결된다.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적은 이해타산으로 죽인다. 아동학대의 가해자는 친부모가 절대 다수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인재로 구성되는 미래사회를 밝게 볼 수는 없다.


지금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모든 영역에 걸쳐 얼마나 성숙되지 못한 미숙한 현실에서 불안해하고 있는가. 보고 듣는 것마다 너무나 보통 사람들의 상식을 뛰어넘는다. 어떤 때는 유치하고 가증스럽다. 이러한 결과가 과격이나 폭력이나 시위나 돌출행위로 악의적 변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 원인제공은 가정의 어른들, 국민들이 뽑아준 어른들, 기업의 어른들, 모든 부류의 어른들이다.


교회도 별다르지 못하다. 교회윤리는 피로 값주고 산 하나님의 공동체로 하나님에게 모든 주권을 맡기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의 제자로 지역과 이웃 나라 더 나아가 온 세계를 예수의 마을로 만드는 것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하나님을 향한 성결과 정직을 잃었다. 이웃을 배려 못하는 독선과 자기 띄우기에 이웃의 눈도 의식치 않는다.


근간에 평양100주년 기념 성회 또는 각 교단들의 대형집회를 보면서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100년 전, 그때는 부흥사경회 인도자나 설교자가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았다. 순서도 많지 않았으며, 기도도 3분, 5분 등으로 제한하지 않았다. 영성 충만하도록 마음껏 성경공부하고 마음껏 기도하고 미치다시피 찬송했다. 지금같이 율동하면서 하는 복음성가도 아니다. 예수의 피 찬송이다. 교회의 원래 모습으로 변모되는 대회가 되고, 입으로 하는 전도보다 초대교회의 생활전도가 되었으면 한다. 대형집회 한번 하려면 교단 배정, 인물 배정 때문에 몇몇 사람들의 비위 맞추는 행사가 된다.


세계에서 제일 큰 대만의 빌딩보다 더 큰 빌딩이 중국에 세워진다고 야단이다. 성경은 이 사건을 바벨탑사건으로 묘사하였으니 아무리 높은 건물도 한계가 있다. 오히려 낮은 자가 복되고 평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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