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섭 교수의, 3대 ‘쉐마 가족’의 성령님 충만과 선교 사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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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섭 교수의, 3대 ‘쉐마 가족’의 성령님 충만과 선교 사명 (중)
  • 송영락
  • 승인 2007.05.31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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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사랑 없이 이웃사랑 ‘무의미’

이스라엘 신앙공동체에는 앞서 살핀 ‘쉐마’나 613개의 ‘계명’(미쯔바)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여러 종류의 전문가나 지도자들이 구약시대에 존재해 왔다: 장로, 지혜자(하캄, 전 12:11), 제사장과 레위인, 선지자, 교사(빈[대상 25:8]; 멜람메드[시 119:99]; 모레[사 30:20; 합 2:18]; 바알[전 12:11]), 에스라 같은 서기관(소페르; 613번 째 계명은 서기관은 평생에 율법서[모세오경] 필사를 끝내야 함을 명시한다).

 

신구약 중간(혹은 ‘제 2성전’)시대부터 예수님 당대까지에는 제사장, 장로, 바리새인, 서기관(그람마튜스; 마 2:4; 막 12:32), 바리새인, 랍비와 함께 우리가 살피려는 ‘율법사’(노미코스[마 22:35] 혹은  노모디다스칼로스[눅 5:17; 행 5:34; 딤전 1:7; 딛 3:13])가 있었다.

 

하루는 유대인 율법사가 예수님을 찾아와 물었다. “선생님이여, [613개의] 율법 중에 어떤 계명이 가장 크니이까?”(마태복음 22:36). 율법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자들 사이에 이미 이 많은 계명의 중요성의 서열이나 요약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어 왔기에 이 질문은 여러모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대답은 이러하였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호스 세아우톤)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여기 전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쉐마의 첫 대목이요 ‘하라’의 제 3번째 계명인 신명기 6:5를 인용한 것이며,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은 레위기 19:18의 인용으로서 ‘하라’의 제 206번째 계명이다. ‘하라’ 계명을 몇 개 소개한다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어라”(1계명; 히 11:6 참조),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믿어라”(2계명; 롬 3:29; 약 2:19 참조), “하나님을 섬겨라”(4계명; 마 4:10) 등이 있다. 이 모든 사실은 구약의 613 계명이 소위 은혜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미 폐지되고 아무런 관계나 의미를 갖지 못한다는 잘못된 주장을 일축하게 한다(마 5:19).

 

오히려 예수님이 밝혀주시는 것처럼,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란 두 계명에 모든 구약성경(“율법과 선지자”란 고정문구는 구약전체를 가리키는 유대인 통칭이다; 마 5:17; 행 13:15; 롬 3:21)이 ‘매달려’(한글성경에 ‘강령’이라 번역된 동사 ‘크레만누미’의 뜻) 있다는 사실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마저도 613 계명의 내용과 정신에 대해 새로운 도전과 철저하고 정확한 학습을 요청받는 것이다.

 

갈라디아 3:10은 신명기 27:26을 인용하여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선언한다. 한국의 일천 만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아니 모든 구약학자들 가운데라도 613개의 계명을 다 기억하는 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는가? 혹 있다 해도, 항상 그 모든 계명을 다 지킬 수 있는 자가 있는가? 이런 관점에서 우리 모든 인생들은 율법이 명시한 ‘저주 아래 있는 자’(롬 3:19-20)이다.

 

역사적으로 ‘613개의 율법’을 온전히 항상 다 지킬 수 있는 자는 오직 우리 주 예수님 뿐이셨고(마 5:17; 요 19:30; 히 4:15), 율법의 저주를 받은 우리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를 속량하실 수 있는 구원자가 되셨다(갈 3:13; 롬 4:15; 고후 5:21).

 

아담 하와가 범죄한 후 무화과 잎을 각자가 엮어 만든 자신의 ‘앞가리개’(하고르, 창 3:7)를 하나님께서 벗기시고, 손수 양을 죽여 만든 ‘가죽 옷’(창 3:21)을 입히신 것은 ‘율법과 은혜’에 대한 기본적인 진리를 드러내는 것이다. 즉 세상종교(예: 불교, 유대교, 로마 가톨릭)가 지향하는 율법과 선행의 인간적 의는 다 ‘생리대’(사 64:6의 ‘베게드 잇딤’은 ‘[생리]주기들의 옷’이란 뜻])와 같은 것이기에 벗겨야 하며, 오직 ‘하나님의 의’(롬 3:21-24; 갈 2:16; 3:27)이시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죽임 당한 어린양”(요 1:29; 계 5:12)이신 예수님을 구주로 받아들여 ‘예수님의 옷’을 입고(갈 3:27; 롬 13:14), 그 세마포 흰 옷을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빠는 자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계 3:4; 22:14)는 복음의 기본진리를 예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율법은 언제나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죄인들을 인도해 주는 ‘유치원 가정교사’(파이다고고스, 갈 3:24)와 같은 것이다.

 

언약 백성이 준수해야 할 613개의 계명을 지키기 위하여 여호와를 위하여 ‘스스로 할례를 하고’(물, 수동태; 신 10:16), 마치 “‘묵은 땅을 갈 듯’(니르 니르), ‘마음의 무 할례’(오르라트 레브)를 제거하라”(렘 4:3,4)는 하나님의 명령은 사실상 ‘전적 타락과 부패’(사 59:1-8 참조)와 ‘무능’(사 59:9-15상; 창 6:5; 시 14:1-4; 51:5; 130:3; 사 59:3-8; 64:6-7; 렘 13:23; 겔 2:3-8; 15-16장)의 인생으로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모세의 유언적 설교를 통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언약백성과 그 후손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모든 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심령 할례’(물라트 레브, 신 30:6)의 근본적 해법을 약속하신다.

 

 이 심령할례는 어느 피조물도 “미리 보거나 듣거나 생각할 수 없는”(사 64:4; 고전 2:9) 하나님의 ‘새 일’(하다샤, 사 43:19; 렘 31:22)이요, ‘새 언약’(베리트 하다샤, 렘 31:31)이다. 그 내용은 “‘새 마음’(레브 하다쉬)을 주고 ‘새 영’(루아흐 하다쉬)을 내가 너희 속에 두어, 너희 살에서 ‘돌 [같이 굳은] 마음’(레브 하에벤)을 제하고, 너희에게 ‘살’ [같이 부드러운] 마음(레브 바사르)을 주며, 또 ‘내 영’(루히)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 안에서 걸어가고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겔 36:26-27; 참조. 11:19; 18:31; 37:14)는 것이었다.  달리 말하면, “내 율법을 그들 속에 두고, 그들의 마음 위에 내가 그것을 기록하는”(렘 31:33) 것이며, “평생 나를 경외하도록 ‘한 마음’(레브 에하드)과 ‘한 길’(데렉 에하드)을 주시는”(렘 32:39; 참조 30절) “성령님 안에서의 심령 할례”(페리토메 카르디아스 엔 프뉴마티, 롬 2:29)인 것이다.  더 이상 ‘여호와를 알라’(렘 31:34)고 할 필요가 없는 것은 “[성령님의] ‘기름부음’(크리스마)이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시기”(요일 2:27) 때문이다.

 

성령님을 죄인의 심령 중심에 내주하게 하시겠다는 이 놀라운 새 언약, 새 일은 더 강력한 이미지로 구약에서 약속된다. 갈하고 마른 땅에 가장 큰 복이 ‘부어지는’(야짜크) 비와 시내물이라면, ‘나의 영’(루히), 즉 성령님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줄’(야짜크) 것을 약속한다(사 44:3).  이사야 59장은 ‘전적 타락과 부패’(1-9절)와 ‘무능’(10-15상)의 회중에게 열방의 동서쪽에서 여호와의 이름과 영광을 경외할 것은 [폭우 같이 부으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급류 같이 오실 것이며, ‘여호와의 영’(루아흐 아도나이)이 그[급류] 안에 ‘운행하고 계시기’(노세사) 계셔서(19절), “그들과 [맺은] 나의 [새] 언약,  곧 네 위에 [임한] ‘나의 영’(루히)과 네 입에 둔 ‘내 말씀들’(데바라이)이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 입에서와 네 씨의 입에서와 네 씨의 씨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21절)고 계명을 지킬 능력의 성령님이 3대에 걸쳐 역사하실 것을 확증한다.


요엘 역시 “
그 후에(아하레 켄) 내가 ‘내 영’(루히)을 모든 육체에 ‘쏟아 부으리니’(샤파크, 2:28; 참조. 겔 39:29; 슥 12:10)”라고 약속하면서 자녀들이 예언하며, 노인과 청년이 환상을 보며, 심지어 남종과 여종에게도  ‘내 영’을 쏟아 부으리라(욜 2:28-29)는 성령님의 민주화(민 11:29의 성취)를 예언하며, 바로 초대교회 오순절에 성취되어 오늘에까지 그 은혜가 작동되어 성령님과 613개의 계명에 대한 우리의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고 있다. 백석대 기독신학대학원 원장,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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