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기독교교육에서 바라본 인성교육의 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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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기독교교육에서 바라본 인성교육의 접근
  • 승인 2001.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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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발생하는 많은 사건과 사고의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들은 인성교육의 부재를 걱정하게 된다. 신문의 사회면에서 접하는 끔찍한 사건들을 읽으면서 우리들은 어쩌다가 사회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를 생각하면서 대안을 찾고자 노력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되풀이되는 일반적인 기사의 내용을 접하고서, 며칠이 지나지 않아 우리는 그 사건을 잊게된다. 매일의 삶이 너무나 바쁘게 돌아가고, 하루에 우리들이 처리해야할 정보와 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이 사회가 앞으로 보다 나아질 것이라는데 거의 동의를 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는 더욱 더 비인간화되어질 것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현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주장들이 전개되어지고, 실질적으로 인성교육을 실시하는 학교들이 있는 것은 우리들에게 새로운 희망의 빛을 비추고 있다는 생각이다. 인성교육 프로그램은 앞으로 한국의 교회와 학교에 하나의 기독교적 인성교육의 전형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인성이라는 의미는 성품 혹은 성격과 유사하게 사용된다. 인성은 각 개인이 가지는 사고와 태도 및 행동 특성을 지칭한다. 이러한 인성 혹은 성격은 소질적인 기질과 생육환경 및 사회적 역할 등에 의하여 형성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 이는 한 개인의 생득적인 기질(성격)과 성장하는 환경(가정을 중심으로)과 사회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역할에 대한 정체성이 어우러져서 형성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인성의 형성이 과연 올바른 방향설정인지를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비판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여기에 대한 비판은 지면의 제한으로 인하여 생략하고, 기독교적 의미에서의 인성의 계발과 교육의 방향에 집중하고자 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타락의 결과는 죄인된 인간의 성품의 타락을 의미하며, 인간이 창조시에 가졌을 것으로 추측되는 신의 성품의 존재 가능성의 상실을 의미한다. 이는 곧 인간에게 나타난 원래적 의미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와 회복 그리고 재창조가 없이는 인간의 인성의 계발과 교육의 의미는 결국 없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타락한 인간은 죄로부터 벗어나는 탈형성교육(Entbildung)이 필요하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예수그리스도를 향한 투입형성교육(Hineinbildung)이 필연적이다. 이런 후에 인간은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인성교육의 가능성을 계발할 수 있게된다. 이러한 새로운 피조물은 곧 '생명의 성령의 법'을 지향하는 인성계발과 교육을 의미해야만 한다.

이러한 새로운 생명 하에서의 인성의 계발은 곧‘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인성교육은 곧 성경에 나타난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내용과 단어들을 중심한 교육이 발생해야함을 의미한다. 이는 우리들이 중생을 하였을지라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기 위한 되어져 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적 인성교육의 내용들은 바로‘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갈5:22-23)와 믿음과 덕과 지식과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형제우애와 사랑(벧후1:5-7)등과 같은 내용들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교육이 행해져야만 할 것이다.

하나님의 진리탐구와 사랑의 나눔 그리고 섬김의 봉사를 통한 기독교 공동체를 지향하는 인성교육 프로그램의 계발과 실천이 필연적이다. 이러한 점에서 기독인이 추구해야할 기독교적 인성지수의 계발이 필요하다. 이는 기독교적 인성교육이 지향하는 바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실시되는 인성교육과는 차별 되이 행해져야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독인들이 생각하는 인성교육의 내용은 대부분 예절교육의 차원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기독인들이 지향해야하는 인성교육은 곧 이 어두운 세대를 분석하고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이 세상의 모든 가치관과 세계관을 극복 지양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의 문화와 삶의 양식을 위한 틀로서 진행되어야만 할 것이다.

윤화석(천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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