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사람이 그리우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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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사람이 그리우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
  • 승인 2001.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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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노원구 월계2동에 있는 월계종합사회복지관. 매일 오전 11시 30분이 되면 할머니·할아버지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한다. 복지관에서 제공하는 급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영구임대아파트가 들어서 있기 때문일까. 월계2동에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유난히 많은 노인들을 볼 수 있다. 월계2동에만 2천1백여명의 노인이 거주하고 있고 식사조달 능력이 없는 8백명의 수급권 대상 노인들이 이곳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그중 2백70명은 가족들을 먼저 보내고 홀로 남게 되었거나 애지중지 키워온 자식들에게서 버림받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독거노인들로 하루종일 TV를 벗삼아 10여 평 아파트 한구석을 쓸쓸히 지키고 있다. 정부보조금 20~30만원은 생활비로도 턱없이 모자라 복지관 급식 한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는 분들도 상당수라고 한다.

“도움이 없으면 식사를 챙기지 못하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의 건강도 갈수록 나빠지고 있어요”복지관 관계자는 거동이 불편한 분들을 위해 도시락·반찬 배달 서비스, 입욕 서비스 등을 실시하고 있지만 부족한 재정과 인력으론 도와드리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독거노인들이 가장 기다리고 있는 것은 넉넉한 밥상도 자주 찾아오는 입욕차량도 아닌 바로 사람의 따뜻한 정(情)이었다. 힘들여 사람을 찾아 집 밖으로 나가기 전까지는 아무 말없는 적적한 침묵의 시간 속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자원봉사자들과 홀로 살고 있는 최○○ 할머니 집의 문을 두들기자 최할머니는 덥썩 손부터 잡으며 반갑게 손님을 맞았다. 가끔씩 안부를 묻고 인사나 전하러 오는 낯선 손님들이지만 최할머니는 이렇게 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연신 전하며 사람들을 향한 그리움을 나타냈다.

최할머니는 누군가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지 작년보다 허리가 많이 안 좋아졌다는 등 살아가는 얘기를 자원봉사자들에게 들려주느라 바빴다. 어느 샌가 친자식 같은 자원봉사자들의 고민거리까지 받아주고 있었다.

“처음에는 독거노인분들에게 무언가를 주려고 했어요. 솔직히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모르면서요.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제가 그분들에게서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6년째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김경래씨(32. 선교단체 간사)는 이젠 독거노인분들에게 특별한 도움을 줘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부모님을 대하듯 독거노인들을 모시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여가시간에 문화생활을 좀 자제하고 독거노인분들을 찾아가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란다.

“딸 둘이 있는데 같이 살기 싫어. 그냥 혼자 사는 게 맘 편해…”애써 태연하게 말했지만 자제분들이 자주 찾아오지 않느냐는 질문에 답하는 할머니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같이 살고 싶어도 자식에게 짐이 될까 마음 고생 하느니 외롭고 불편한 것이 낫다고 차마 말하지 못하는 최할머니는 이미 오래 전에 자식들의 보살핌을 체념하신 것 같았다.

아파트 현관과 벤치 곳곳에 앉아 바람을 쐬는 할머니들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복지관 관계자로부터 독거노인들을 위한 보다 시급한 일이 있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것은 중풍 등 오랜 지병으로 인해 식사를 하러 복지관으로 걸어 올 수도 없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조차 모른 채 방치돼 한없이 고통 가운데 있어야 하는 노인들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복지관 관계자는 그러기 위해서는 이웃들의 관심과 적극적인 자원봉사 참여가 절실하다고 호소했다.

외로운 독거노인들. 더 나은 선진국형 사회복지제도를 만들기 위해 필히 거쳐야 하는 사회현상일까. 가족들이 살아있는데도 기관이 개입하고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닿아야 하는 현실이 모순처럼 느껴졌다. 당신이 죽었을 때 사람들이 빨리 발견하도록 아파트 현관문을 닫지 않고 지낸다는 최할머니의 말이 좀처럼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인터뷰-월계사회복지관 김연정과장

"노인들에게 보탬주는 사람이되고파"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복지관을 지나칠 때마다 얼굴에 환한 기쁨을 띠었으면 좋겠어요”김연정과장(29. 온누리교회)은 월계종합사회복지관이 독거노인들의 가정이 되고 작은 쉼터가 되는 비전을 품고 있다.

노인분들과 교제하며 어둡던 그들의 표정에 미소가 지는 것을 볼 때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한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고백을 드린다고 한다. 그래서 김과장은 이 지역에 늘 보탬이 되는 사람으로 서 있고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지도록 순간순간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김과장은 독거노인들을 돕기 위해 월계동 전체가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 받는 마을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급식 같은 경우만 해도 독거노인과 일반가정이 의부모 결연을 맺어 식사를 제공해 준다면 지금보다 훨씬 적은 비용을 들이고도 살맛나는 마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교회와 노인, 복지관의 삼겹줄이 끊이지 않아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는다.

“자원봉사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어렵지 않아요. 내가 가진 것 만큼만 나누면 돼요” 김과장은 모든 지역주민이 노인분들과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광경을 떠올리며 작은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구자천기자(jckoo@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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