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에큐메니칼순례 동행취재기-하] '하나됨' 그 가능성을 확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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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에큐메니칼순례 동행취재기-하] '하나됨' 그 가능성을 확인하다
  • 이현주
  • 승인 2007.01.12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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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정교회 총대주교 방문... 하나의 뿌리에서 갈라진 세종교 일치점을 찾았다

 

세계에서 제일 작은 나라로 불리는 바티칸은 규모에 비해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도 분쟁과 소용돌이 속에서 교황의 메시지를 기다린다. 그의 말 한마디는 실로 엄청난 영향력을 끼친다. 이뿐 아니다. 작은 나라 바티칸의 정보력은 세계 최고로 손꼽힌다. 아주 세밀한 부분까지 교황이 간여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미난 것은 한국에도 바티칸 시민이 있다는 점. 로마 가톨릭은 세계의 주교들을 직접 선출하고 그들에게 바티칸 시민이 될 권리를 부여한다. 한국 가톨릭 주교 역시 바티칸 시민으로 살아가고 있고 또 바티칸은 대주교급으로 한국에 대사를 파견하고 있다.


세계교회협의회 코비아총무와 로마 가톨릭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접견함으로써 서로의 종교와 신앙에 대해 하나씩 배워간 에큐메니칼 순례단은 로마의 남은 일정동안 성요한성당과 카타콤바를 둘러보며 초대교회 사도들의 피땀 어린 열정과 노력을 간접적으로 체험했다.
 

베드로성당, 요한성당 등 역사의 흔적을 접한 일행은 로마 시내 관광을 마치고 정교회가 위치한 터키 이스탄불로 향했다. 이탈리아 항공사의 파업으로 동방정교회 바돌로메오스 총대주교와의 만남이 하루 미뤄진 순례단은 일정의 마지막 날인 12월 17일에야 총대주교좌청을 방문할 수 있었다.


동서양 관문도시 이스탄불


동서양을 잇는 관문도시 이스탄불의 첫 인상은 활기찼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동쪽으로 가까워져 오는 까닭에 서양보다는 사뭇 친근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아시아와 유럽 양대륙에 국토를 두고 있는 터키는 현재 EU가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12월 초 터키를 방문한 교황이 EU가입 지지의사를 밝힐 만큼 민감한 사안이기도 하다. 아시아보다 유럽이 되고 싶은 나라 터키는 그만큼 종교적으로도 이슬람에서 자유롭다고 한다.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에게서 브라카를 찾아보기 힘들고 전통종교로 이슬람이 남아 있을 뿐, 적극적이고 독실한 무슬림은 많지 않은 편이라고 현지 가이드는 설명했다.

 
유럽국가가 되기 위해서 철저히 종교색을 배제해야 하는 상황에서 터키, 그중에서도 유럽대륙에 속한 이스탄불은 점점 더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비교적 자유로운 터키 역시 종교의 자유는 허락되지만 포교는 통제하고 있어 선교에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키는 중동지역의 선교거점으로 중요한 지정학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빼앗긴 기독교 역사


이스탄불은 사실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더 유명하다. 오랜 기독교전통을 간직한 덕에 콘스탄티노플이 기독교에 미친 영향력과 유산은 막대하다. 그중 하나가 소피아 성당.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에 지어진 거대한 건물은 높이 56미터의 돔형 건물로 기둥 없이 벽체위에 지붕을 얹었다. 2년 전 터키 대지진에도 약간의 뒤틀림 외에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며 불가사의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을 위해 지어진 성전이 지금은 무슬림에 의해 왜곡되고 버려졌다는 사실. 15세기 투르크제국에 의해 함락된 콘스탄티노플은 한 제국의 멸망이라기보다는 기독교의 쇠퇴를 가져왔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큰 상처를 남겼다.


가장 큰 상처를 입은 곳이 바로 이 소피아 성당.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졌지만 지금은 무슬림에 의해 회칠을 당하고 방치된 채 박물관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비잔틴시대를 읽을 수 있는 수많은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모자이크 성화는 뜯겨져 나갔거나 칠로 덮여 아라베스크문양의 천박한 그림과 코란구절들만 남아있었다. 비잔틴 유적을 복원해야한다는 여론 속에서도 사실상 터키정부는 소피아성당을 그대로 방치했다. 보다 못한 국제기구들이 직접 나서 복원에 참여하고 있지만 비협조적인 정부의 태도로 그 또한 속도가 느릴 뿐 아니라 이슬람권에서는 자신들의 전통과 역사를 훼손하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소피아성당을 둘러본 한 일행은 하나님의 성전이 모스크로 변하고 또 박물관으로 버려진 것에 분노를 표현했다. 오직 한분의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해 세워진 성전에서 이방신의 제사가 드려지고 이방종교인들이 드나드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성전을 회복하는 일은 우리에게 중요한 과제로 남았다. 그것은 곧 믿지 않는 이방종교인들을 향한 선교를 의미했다. 하나의 말씀으로 시작한 기독교가 서방과 동방교회로, 또 서방교회가 천주교와 개신교로 갈라지는 분열의 역사를 거듭하고 있는 동안 이슬람은 꾸준히 하나님의 도시를 점령해 나갔다.

하루 다섯 번씩 드리는 기도. 그것을 단지 형식이라고 치부할 수 없었다. 매일 주어진 자리에서 자신이 무슬림임을 공공연히 드러내며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그들을 보며, 식사기도조차 생략한 채 편의적인 신앙에 빠진 우리의 신앙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기독교 유적을 답사한 후 동방정교회 바돌로메오스 총대주교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총대주교좌성당에서는 매캐한 유향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향과 등,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된 예배당은 정교회만의 색채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 동방정교회 바돌로메오스 총대주교.
`하나되게 하소서` 주님 유언을 따라서


총대주교좌교회에는 로마병사에게 체포된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을 때 붙들고 계셨다는 기둥이 보존되어 있었고 분열의 상처를 딛고 대화를 시작한 가톨릭교회에서 돌려받은 그레고리오스 대주교와 요한 크르소스톰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었다.


교회와 총대주교 집무실 곳곳에는 비잔틴 십자가와 비잔틴시대의 성화가 진열되어 있었는데 서방에서 동방으로 이동하면서 기독교문화 역시 동방종교들과 혼합적인 색채를 띠게 됐다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왔다.


동방정교회 총본산을 방문한 것은 신구교 모두에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신구교간 화해에서 정교회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 1054년 동서방교회의 분열 이후 하나의 교회를 고수하고 있는 정교회와 달리 기독교는 1517년 종교개혁의 시작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로 분열을 경험했다. 일행을 맞이한 바돌로메오스 총대주교는 하나됨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정교회와 가톨릭 간 대화와 일치노력을 소개했다. 또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며 한반도에 평화가 깃들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교차점에 위치하고 있는 총대주교청의 특성상 정교회의 역할은 그리스도인 일치를 넘어 이슬람과의 종교간 대화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9박10일간의 일정으로 진행된 하나됨의 여정. 순례단은 이론으로만 이해했던 서로의 종교에 대해 직접 눈으로 보고 듣고 체험함으로써 한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순례에 동행했던 한신대 채수일교수는 “가톨릭과 정교회의 공식방문이 처음이었고 개신교 신학자로서 최고위층의 영접을 받은 것은 영광스러운 경험”이라고 표현했다. 그동안 신학적 주제에 대한 토론과 신앙생활에 대한 이론적인 대화가 오갔지만 바로 교회사의 현장에서 종교전통과 신앙생활을 직접 목격함으로써 많은 오해들이 풀려 나갔다고 밝혔다.

백도웅 교회협 전 총무 역시 “순례의 길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하나가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았다”고 말했다. 분열된 교회들이 하나가 되고 다시 이들이 한 목소리로 세계평화를 이야기할 때 그 힘은 배가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가톨릭 주교회의에서 참석한 김희중주교는 “예수님께서 유언으로 남기신 ‘하나되게 하소서’라는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는 시간이었다”며 “이번 순례를 통해 뿌리가 같은 가톨릭과 정교회 그리고 개신교가 하나가 되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해답을 얻었다”고 말했다.

‘뿌리를 찾아가는 여정’. 같은 하나님을 믿는 세 종교가 참으로 오랜 시간 먼 길을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됨’.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사명이었고 우리는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사명을 완수하지 못했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시작한 순례의 길에서 발견한 것은 ‘희망의 씨앗’. 앞으로 계속될 순례와 만남을 통해 ‘그리스도인 일치의 열매’가 곧 열릴 것이라는 희망을 얻었다.


<이스탄불=이현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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