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기쁜 소식이 온 누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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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기쁜 소식이 온 누리에
  • 현승미
  • 승인 2006.12.20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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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호<대한성공회 서울교구 교무국장>

 

인류의 역사는 더 많이 가지고 소유하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켰고 이기기 위해서 사람을 죽인 투쟁의 역사였습니다. 인류의 역사 가운데 이러한 싸움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남자들의 손에 죽어간 여인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죽어간 사람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짐승처럼 노예의 삶을 살아야 했던 사람들, 부유한 사람들에 의해 죽어간 가난한 사람들, 강대국에 의해 멸망한 약소국가들, 이처럼 인류의 역사는 나 외에 다른 사람을 노예와 종으로 취급하며 살아왔습니다. 이것이 과학과 기술문명을 일구어 낸 인류의 역사의 한 면이며, 인류가 겪어온 죄의 결과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소유의 가치관, 약육강식의 지배논리, 삶의 방식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혼과 마음과 육체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나기 600년 전 예언자 이사야는 메시야 탄생의 예언하면서 “우리를 위하여 태어날 한 아기, 우리에게 주시는 아드님 그 어깨에 주권이 메어지겠고 그 이름은 탁월한 경륜가, 용사이신 하나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왕“으로 오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외세의 침략으로 억눌림과 폭압 속에 식민지 백성으로 살아야 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메시야를 그렇게 갈망하고 기다린 이유는 바로 그들을 로마의 폭압과 억눌림 가운데 구원해 줄 평화의 메시야였다는 것이지요.       


아기 예수는 평화의 왕으로 오셨고, 새로운 평화의 길을 가셨으며, 그 평화의 길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류 역사가 보여 주었던 평화의 길과는 너무도 다른 새로운 방식이었습니다. 마구간에 태어나신 아기 예수님은 아담 이후에 인간이 추구한 소유의 가치관과 약육강식의 삶의 방식을 전면으로 부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그동안 추구해온 투쟁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만의 새로운 방법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겠다는 굳은 의도를 드러내신 사건입니다.


가장 천하고 낮은 말구유에 오신 예수님은 앞으로 가장 낮은 곳으로 가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 밥 그릇에 오신 예수님은 앞으로 세상 사람들의 밥으로 먹이가 되시겠다는 의지표현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분명한 의지는 천사들의 노래입니다.


“하늘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이 노래는 엄청난 신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구간에 태어난 핏덩이 아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는 것이지요.


이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요 비천한 갈릴리의 여인 마리아가 낳은 아들을 통해서 투쟁과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던 이 땅에 하나님의 평화가 임한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아기 예수님의 탄생소식은 제국의 군사력이나 힘에 의한 평화가 아니라 새로운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를 구원하시는 방식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거리에는 온통 화려한 성탄 장식과 빛의 축제가 열리고 있지만 지금도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희망을 잃고 추운 겨울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 FTA와 싸우는 농민들, 병마와 싸우며 병실에서 신음하는 사람들, 차별과 편견으로 소외당하는 사람들, 고향을 떠나 머나먼 타국에서 고된 일과 차별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야하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 북한에서 억눌림과 배고품을 이겨내야하는 동포들, 끝없는 전쟁의 아픔을 겪고 있는 이라크 국민들 등 우리 주변에는 예수그리스도의 진정한 평화를 갈망하는 우리의 낮은 이웃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에게 2천년 전 태어나 인류의 전쟁과 싸움을 거듭해온 인류에게 진정한 하나님의 평화를 알렸던 것처럼 지금 이 시간 성탄의 기쁜 소식과 평화와 희망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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