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섬에 복음 전하는 이문희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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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섬에 복음 전하는 이문희 전도사
  • 승인 2001.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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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섬마을에 울리는 하나님의 멜로디”

은 땅 우리나라에 아직도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얼마나 알까. 그러한 척박한 땅을 복음화 시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또한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유난히 섬이 많은 전라남도 신안군. 그 가운데 장상면 막금도에서 몇 안되는 섬 주민들의 복음화를 위해 막금도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이문희전도사(41세·가족 사진 가운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심정으로 복음의 불모지만을 찾아나서고 있다.

김공장을 경영하는 남편 덕에 큰 어려움 없이 살아온 그녀가 이처럼 복음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지난해 인생의 커다란 전환기를 맞은 후 부터. IMF가운데서도 위기를 넘긴 그녀의 가정이었지만 자녀들로 인한 근심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위기로 찾아왔다.

예수를 믿는다고는 하지만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자식들을 하나님보다 더 끔찍히 여기다시피하던 그녀에게 자녀의 가출(?)은 충격으로 다가왔으며 커다란 그녀의 몸을 쓰러뜨리고야 말았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일로 그녀를 6개월이 넘게 병원에 묶어 두었다.

병상에서 그녀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다. 아니 자녀들을 우상삼아 생활하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싶었던 것이다. 순간 그녀에게 강력한 느낌이 왔다. 왠지 찬양을 하면 몸이 나을 것 같은 막연한 심정이었으며, 곧바로 이같은 사실을 남편에게 고백했다. 커다란 후원자인 남편은 아무런 거부없이 그녀의 청을 들어주었다.

신문을 통해 무료녹음을 해준다고 하는 서울의 에코이스녹음실(대표:고영섭)을 찾아 불편한 몸을 이끌고 그녀는 서울로 향했다. 지난해 8월의 일이다. 고영섭 사장의 배려로 어렵사리 녹음을 마친 그녀는 놀랍게도 병이 회복돼 병원에서 퇴원했다. 오랜 입원생활로 조울증까지 겹쳤던 그녀에겐 하나의 기적이었으며, 은혜를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어려서부터 노래부르기를 좋았했지만 정식으로 음반을 내기는 처음이었다. 때문에 그녀의 첫 번째 음반엔 타이틀곡 ‘주님 것을 내 것이라고’를 비롯해 18곡들이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사랑하고 주님을 외면했던 자신을 고백하는 내용으로 담겨있다.

몸을 회복한 그녀는 새로운 삶을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 기도하던 중 섬으로 가라는 음성에 이끌려 지금의 막금도로 갔다. “이제는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것이니까”라는 순종의 마음뿐이었다. 막금도는 섬 전체 인구래야 8가구밖에 안되는 곳으로 사명없이는 갈 수 없는 곳이었다.

막금도는 목포에서 배를 타고 장산본도에서 내려 다시 배를 갈아탄 후 1시간 30분을 가서 다시 행정선으로 갈아타고 50분을 들어가야 도착하는 험난한 섬이다. 배에 내려 10분 정도를 걸으면 아담한 교회에 다다른다. 1주일에 한번씩 목포에서 막금도를 향해 왕복하기를 거듭하는 이 전도사는 1회 때마다 배삯과 점심값, 헌금 등 10만원 가까운 비용을 자비로 감당하면서 주민들을 섬겨왔다.

또 섬에는 가게라고는 없기 때문에 성도들에게 맛있는 점심을 만들어 주기 위해 그녀는 배를 타기 전에 목포에서 장을 보곤 한다. 그 결과 처음 3가정에 머물던 복음화율이 이제는 5가정에 이르며 기도의 불씨가 확산되고 있다.

매주 수요일 2시간 30분 걸려 교회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나님께 기도한다. 1시간 정도를 기도로 사역을 시작한 그녀는 2시간에 걸쳐 흩어져 있는 가정과 고추밭, 논 등을 심방한다. 몸이 불편한 그녀에게 두 시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절대적으로 함께 하는 순간들이다.

심방을 마치고 돌아오면 곧바로 수요 저녁예배를 드린다. 몇 안되는 성도들이지만 자식들의 구원을 비롯해 이 땅의 복음화와 나아가 세계복음화까지를 간구하는 기도의 용사들이다.

56세 되는 주민이 제일 젊고 7,80대가 주를 이루고 있는데 너무 순수하고 착하고 깨끗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를 잘 들어줄 것 같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자 소망이다. 실제로 이곳에선 작은 기적들이 일어났다. 아픈 주민이 교회에 와 누워서 예배 드리다가 한 달 뒤 앉아서 예배드리게 됐고 지금은 밭에 나가 일까지 할 정도로 좋아졌다.

이같은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 전도사는 자신은 물론 몸이 불편한 성도들의 몸이 회복되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증거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 주일학교부터 신앙생활을 시작한 그녀는 걸어서 1시간 넘게 걸렸는데도 마을에서 혼자 교회에 참석하는 열성을 보였으며, 공동묘지를 지나올 때 찬양으로 두려움을 떨치려했던 어린 마음이 오늘날 그녀를 아마추어 찬양사역자로 이끌었다고 믿고 있다. 새벽기도 중에 하나님 말씀으로 공부하라고 깨닫게 하셨으나 3번이나 거부했던 그녀는 3년 전에야 신학공부를 시작, 10월에 졸업을 앞두고 있고 이후 다시 신학대학으로 편입할 계획으로 기도하고 있다.

주님께서 허락하실 때까지 막금도를 지킬 것을 교인들과 약속한 이문희전도사.

자신이 만든 찬양테잎 2천 개를 농어촌 교회에 선교용으로 전달해 주고 찬양집회를 원하는 곳이면 마다않고 찾아가고 있으며, 오는 10월29일엔 직접 중국을 방문해 조선족들에게 찬양테잎을 전할 계획이다.

섬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기 1년 남짓. 이 전도사는 “남들은 고생이라고 하지만 고생이라고 여기지 않고 그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할 뿐”이라면서 “노래를 잘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기꺼이 찬양하겠다”는 생각에 앞으로의 사역은 찬송하고 전도하는 일뿐임을 부끄럽게 고백하고 있다.

이석훈차장(shlee@uc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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