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굽의 궁정교회’로부터‘광야 출애굽의 교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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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의 궁정교회’로부터‘광야 출애굽의 교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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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11.0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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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창목사 / 서초교회>


현대 사회의 제도적 타성에 젖어가는 권위주의적 교회들에 대하여 에큐메니칼 신학이 비판적 의미에서 애굽의 궁정교회라는 표현을 할 때가 있다. 교회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 세상 왕이 다스리는 궁정의 제도적 권위주의의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지적하는 것이다.


현대의 도시 문화 속에 세워진 교회가 권위주의적 제도를 공고히 해나갈 때, 그런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바의 종말론적 방향성보다는 제도적 체제(system)의 완결성과 체제의 성장을 추구해가게 된다. 그러한 흐름 속에서 목회자의 설교는 변화와 중생과 새 창조와 하나님의 나라를 강조하기보다는, 권위주의적 제도의 불가피성과 제도에 대한 순종과 인내에 대한 내용들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변화와 개혁보다는 현상유지(status quo), 순종 그리고 인내를 더 소중히 여기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제도적 교회에 비하여, 광야 출애굽 교회는 삶의 방식을 달리 하게 된다. 광야교회는 제도 위주의 정적 구조보다는 출애굽과 광야에 적합한 동적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체제의 완결과 권위주의적 목소리가 궁정교회의 목회적 리더십이라면, 약속의 땅을 향하여 어려움을 헤치면서 앞서 본을 보이며 나아가야 하는 것이 광야교회의 목회적 리더십이 될 것이다.


애굽의 궁정교회에서는 주로 수직적 순종과 인내를 말한다면, 광야교회에서는 앞서가는 목자의 ‘방향을 제시하는 음성’을 듣고 어려움을 극복해가는 역동적인 삶과 결단이 중요시된다. 그리고 미래와 희망과 목적과 방향성 등의 종말론적인 언어들이 복음의 핵심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수직적 권위보다는 앞서고 뒤따르는 본을 보이는 방식의 목회가 교회적 삶의 양식이 될 수밖에 없다.


궁정교회의 목회자는 체제가 굳건해지고 성장해가면 그것을 목회 성공으로, 목표의 완성에 근접한 것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반면에 광야교회의 목회자는 백성들이 약속의 땅을 향하여, 올바른 목표를 향하여 계속 나아가는 그 자체를 가장 소중히 여기게 될 것이다. 세상과 공유할 수 밖에 없는 지혜의 영역과 교회의 제도적 성격을 다 부인하는 것이 에큐메니칼 교회론이 의도하는 바는 아니다.


무한 경쟁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회 설립 자체가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교회 설립이 어렵고, 기본적인 제도적 성격을 갖추는 것도 어렵다. 개척교회가 교회로서 존속하는 것도 성장하는 것도 역시 어렵다. 그렇지만 설립과 존속과 제도적 성장 그 자체가 사실상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는 목회는 성서 본연의 교회론을 이탈하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 에큐메니칼 교회론이 의도하는 바일 것이다.


애굽의 궁정교회는 교회의 내적 체제를 우선시하는 자기중심적 논리를 펼치게 될 가능성이 많다. 제도적 교회에 순응하고 충성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에 맞닿는 길이 될 것이다. 그런 논리의 흐름이라면, 교회와 세상이 분리되는 이분법적인 구조를 지니게 될 것이요. 그런 구조 속에서 시간성에 붙들린 세상과 역사는 무상한 것이요 허무한 것이 된다. 그러니까 고난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나 사명감은 기독교 신앙과 무관하거나 이차적인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역사와 사회로부터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듣는 것은 그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고 판단된다.


성서적 구원 신앙은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너서 광야 길을 걸어가는 고난의 과정을 통하여 전해져 왔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앞장서서,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인생과 역사 한가운데를 걸어가신 나사렛 예수께서 우리의 구세주이시며, 장차 다시 오실 주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들과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뜻과 그 목적론적 방향성이 에큐메니칼 신학이 전개해가는 교회론적 방향성이 된다. 따라서 에큐메니칼 교회론은 고난의 인생과 역사 속을 걸어가는 종말론적인 교회론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무심코 가르치는 성장 지상주의적인 많은 가르침들 중에는 그런 검증을 거쳐서 교정되어야 할 내용들이 많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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