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으로 생각을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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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생각을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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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10.3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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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호목사<한시미션 대표>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는 것으로는 ‘희망’이라는 답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 위를 보고 아래를 봐도, 좌우 동서남북을 열심히 둘러보아도 도대체 빛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람들은 보통 ‘절망’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최근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해마다 증가해서 OECD 29개 국가 중 자살 증가율 1위, 자살 사망률 4위를 기록했다(2005년 통계청). 특히 20~30대의 사망원인 중 자살이 1위를 차지해, 다음 세대의 이끌어갈 젊은 세대의 좌절감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업난과 비정규직 확산, 장기 내수불황과 날로 커져가는 양극화 문제 등 사회적 원인들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실로 안타깝고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보이는 것’, 즉 지금 당장 눈앞에 놓인 현실을 보고 인식하는 관점이다. 우리 인생들은 보이는 것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특히,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으로는 희망이라는 답이 나오지 않을 때, 눈앞에 닥쳐온 힘겨운 현실 앞에서 하릴없이 무너져가는 자신을 볼 때, 나보다 더 멋지고 잘나 보이는 사람들과 나의 초라한 모습이 확연히 비교될 때, 우리는 차라리 눈을 감고 보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과연 전부일까? 현재 상황은 영원토록 고정 불변하는 것인가? 물론 보이는 게 중요하다. 백 번 귀로 듣는 것보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한 번 확인하는 것이 더 명쾌한 법이다. 또한 현재가 중요하다. 오늘이 없이는 내일도 없으며, 오늘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한, 미래도 밝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없는 많은 것들 또한 알고 있다. 언제나 들이마시고 내쉬는 공기, 상대방의 깊은 속마음, 꿈과 환상은 물론, 지난 과거와 다가올 미래도 우리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 특히나 ‘변화의 가능성’이라는 것은 희망을 가지고 꿈꾸는 자만이 마음속에 그려볼 수 있을 뿐, 육신의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다시 말해 눈에 보이는 것 때문에 절망하지 않을 수 있다. 지금의 모습을 이유로 자신의 인생을 절망의 나락으로 몰아가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에스겔이 살던 시대, 강대국인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한마디로 ‘절망’ 그 자체였다. 낯선 이방 땅으로 강제이주 당한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불공정하며, 조상들 탓에 억울하게 벌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하루하루 깊이를 알 수 없는 절망감과 불평만을 키워가고 있었다. 그러나 당신의 백성들에게 이처럼 큰 시련을 주신 하나님의 본심은 불공정하신 것도, 그들을 사랑하지 않으신 것도 아니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70년의 포로기는 훈련의 시간이다. 영원한 절망이 아니라, 참된 희망을 위한 잠깐의 징계 기간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같은 사실을 에스겔의 마른 뼈 환상을 통해 분명히 선언하신다. 즉 바싹 말라 있던 뼈들에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넣어지자 힘줄이 붙고, 살이 돋고, 가죽이 덮히더니 극히 큰 군대가 되어 일어났다. 눈에 보이는 것은 마른 뼈들이었지만, 희망을 꿈꾸는 자의 눈에 그것은 곧 생기를 품고 힘차게 일어나는 그들의 미래였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내 힘으로는 여기서 끝이라는 생각이 들 때, 도무지 밝은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 그분에 대한 믿음만이 우리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절망의 동굴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희망의 빛을 들고 길을 밝히는 사람이다.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만들어갈 밝은 생각들이 이 땅 이 민족에게 꼭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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