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낱말들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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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낱말들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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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10.1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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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인목사<예장통합총회 기획국장>


옛 속담에 “설마가 사람 잡는다”라는 것이 있다. 설마, 설마 하면서 방심하는 것이 큰 화를 부른다는 속내를 간직한 말일 것이다. 북 핵실험 감행이후 우리가 가진 허탈감, 배신감 등이 이 속담을 생각나게 하는 지난 한 주였다. 여러 가지 국제 정세들이 요 며칠 아침마다 만나게 되는 짙은 안개 속을 헤매는 느낌이 들게 한다. 큰 축하를 해야 할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 당선조차 전쟁위기와 군비확장의 혼란 속에 묻히고 만다.

한 가지 사실을 어떤 각도에서 어떻게, 누가 보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생기는 경우를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그것이고 일본의 ‘독도’ 주장이 그런 것이다. 평화를 이야기 할 때조차도 누구를 위한 누구의 평화이냐가 기본적인 질문이 되어져야할 것이다. 히틀러에게는 독일인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것이 너무도 중요한 우선순위여서 그 외의 다른 것들은 ‘독일인의 우월함’이라는 우선순위 속에 묻히고 정당화되었던 것이다.

남성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가부장제도’는 여성의 모든 면을 남성의 시각으로 재고 평가하는 것을 본다. ‘누가,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말하는가’는 사회적인, 개인적인 결단을 할 때 반드시 물어야 할 중요한 질문이 된다. 그리고 이 질문은 ‘힘의 분석’을 통해서만이 보다 깊이 있게 이해되고 대답되어질 것이다.

여성으로 남성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기관에서 사역하다보면 종종 웃지못할 경험을 하게 된다. 해외 교회와의 에큐메니칼 운동에 참여할 때 대부분의 국제기구들은 여성과 청년의 참여를 고정적으로 못박아놓고 있다. 예를 들면 여성과 남성의 참여 비율은 5:5로, 청년의 참여비율은 30퍼센트 이상으로 등이다.

이럴 경우 남성 목회자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는 모양이다. 농담 비슷하게 하시는 말씀이 “요새는 남자 목회자가 설 곳이 없어, 여자들 세상이야…”이다. 웃으며 넘기기에는 심각하게 왜곡된 이해라고 생각한다. 여성과 청년의 참여가 이렇게라도 보장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정해진 규범인 점을 완전히 무시하는 이해이다.

남여평등이라는 말을 교묘히 뒤집어서 사례에 적용함으로 여성을 다시 억압하는 사례들중 하나다. 자유와 평등을 표현하는 낱말들이 이제는 문맥과 컨텍스트에 따라 기득권자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왜곡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종종 있음을 본다.

인권, 차별, 역차별, 사랑, 돌봄, 평화, 해방 등의 낱말들의 그 참된 뜻을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중산층 백인 남성의 해방을 위하여 사회제도를 개혁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기득권을 누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미국의 중산층 백인여성의 평등과 한국에 살고 있는 동남아 이주노동자 여성의 평등은 본래적인 내용은 같을 지라도 보호되어져야할 우선순위에서 엄청난 차이를 가진다. 같은 말이라도 누가, 누구를 위하여, 무엇을 말하려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의미는 하늘과 땅처럼 달라지기도 한다. 인권과 핵무기가 바로 그 변화 무쌍한 사용의 한가운데 있는 말이 아니가 싶다. 

인권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위해 찾아주기 요구해 줄 수도 있겠지만 가장 강력한 인권의 회복은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때 가능하다. 북한 주민의 인권 회복을 위하여 북한 독재정권에 압력을 가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북한 독재정권이 자국 주민의 기본생존권을 담보로 전 세계와 흥정을 벌이는 이 마당에 우리가 똑같은 형태로 북한 주민의 기본 생존권을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위협하지는 않으면 좋겠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반대할 때, 마찬가지로 전 세계적으로 핵 보유국들이 모두 함께 핵을 포기하는 ‘군비축소’의 방향에서 반대하기를 바란다. 일방적으로 한쪽만을 겨냥하여 반대하거나, 일방적으로 한쪽의 엄청난 기득권을 보장해주기 위한 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 안에서 더 이상 핵무기는 만들어 지지도 사용되지도 말아야만 한다. 군비경쟁으로 소진되는 경제력은 세계의 기아와 질병을 퇴치하기 위한 일에 사용되어야 한다. 우리 믿는 이들의 정의로운 우선순위가 요구되는 때이다.

사회가, 경제가, 정치가 온통 부글거린다. 이런 때 믿는 자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서 우리의 책임을 올바르게 다하는 기회를 가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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