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數)에 대한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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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數)에 대한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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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9.06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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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호목사<한시미션 대표>


숫자가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았는가? 만약 숫자가 없다면, 아마 시계와 달력이 제일 먼저 사라질 것이고, 물건을 사고파는 상거래가 모두 정지될 것이다.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컴퓨터, 전화, TV 등도 모두 한순간에 고철더미가 되어버릴 것이다.


이처럼 숫자의 필요성과 유익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숫자가 있기에 조직과 사회가 그 체제를 견고히 유지해갈 수 있고, 모든 경제활동이 가능하며, 인류의 지식들이 정교하게 다듬어져 계승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숫자의 고마움을 일단 인정하고 보면,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은 숫자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존재들이 되어 가는 것을 보게 된다. 우열을 따져 순서를 매기는 데 익숙하고, 그 순서에 따라 차별화된 대우와 대가는 사람들의 삶의 환경과 조건을 상당 부분 결정해버린다.

그래서 내 점수가 몇 점인지, 내가 반에서 몇 등을 했는지, 직장에서의 내 서열은 몇 번째인지, 내 통장에는 얼마의 돈이 들어있는지 등에 우리의 관심을 온통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말 숫자로 우리 인생의 성공과 행복의 순위를 매길 수 있는가? 숫자로 표현될 수 없는 것들, 순서를 매길 수 없는 것들도 이 세상엔 존재한다. 1과 100, 둘 중에서 더 크고 가치 있는 쪽이 무조건 100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숫자의 많고 적음에 인생의 기쁨과 성공, 실패가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제대로 깨달을 수 있다. 예수님은 수많은 군중들에 둘러싸여 계시면서도 연약하고 가난한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셨고, 바리새인들이 으스대며 내는 헌금보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을 가장 많은 헌금으로 평가하셨다.

또한 우리 예수님께서는 하루 종일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신 그 피곤한 밤에 여러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신다. 거라사 지방에 있는 한 광인을 만나기 위함이셨다. 한 사람을 위해 최소 13명이나 되는 많은 수가 움직인 것이다. 이건 약과다.

인간 구실 제대로 못하는 사람, 가족도 친구도 버려버린 그 한 사람을 구하는 데에 무려 2천 마리나 되는 돼지를 대가로 지불하신다. 그분의 눈엔, 돼지 2천 마리보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한 영혼이 자유함을 얻는 것이 더 소중하고 값진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거라사 사람들이 오히려 예수님에게 그 지방에서 떠나주시기를 청했던 것을 보면 말이다.

또 한 예로 다윗을 생각해 보자. 여섯 규빗 한 뼘이나 되는 골리앗의 큰 키, 놋 오천 세겔이나 되는 그의 갑옷, 철 육백 세겔이나 되는 창날. 이 앞에 선 다윗의 몸은 골리앗이 비웃을 만큼 작고 연약했으며, 그가 들고 간 무기라고는 고작 시냇가에 굴러다니던 돌멩이 다섯 개가 전부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하나님의 사람들은 상식에 준해 살면서도 상식을 뛰어넘는 인생을 사는 자임을 온 세상에 증명해 보였다.

그런데 이처럼 훌륭했던 다윗도 숫자의 유혹에 넘어졌던 경험이 있다. 다윗이 그의 통치 후반부쯤, 국가의 인구조사를 시행한 일이다(삼하 24장; 대상 21장). 그 결과, 이스라엘 중 칼을 뺄만한 자가 110만 명, 유다 백성들 중에서는 47만 명, 총 157만 명의 군인들이 계수 되었다(대상 21:5).

광야 시대에 계수한 이십 세 이상 남자들의 수가 약 60만 명(민 1:46)이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국력이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알 수 있다. 옆에서 다윗의 측근 요압이 보기에도,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다윗의 의도가 뻔히 보였다. 하지만 주변의 말림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재촉했던 다윗의 모습을 보며, 다윗 같은 사람도 그러한 면이 있을진대, 우리는 그 부분에 있어서 얼마나 많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을지 생각해보게 된다.

사람의 숫자, 성적의 숫자, 재물의 숫자에 흔들려 교만하거나 비굴해지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참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온 천하보다 한 사람이 소중하다고 하신 말씀에 따라 생명의 가치를 제대로 존중하며, 세상의 모든 것보다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고, 다수의 불의 앞에서도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을 신뢰하며 정직한 소수의 자리를 선택할 줄 아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를 위한 숫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숫자에 우리의 관심이 넓혀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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