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사업의 성숙한 결실, 경제논리 적용은 안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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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사업의 성숙한 결실, 경제논리 적용은 안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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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9.01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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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찬송가 출판권’ 이렇게 생각한다
 

 

 

송병구부장<기감본부 비서실 기획홍보부>


21세기 찬송가가 곧 발행된다. 그 기대감은 필자 만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 1983년에 발행된 통일찬송가는 한국교회 연합운동사의 개가였다. 통일찬송가 출간은 마치 삼국시대 같았던 합동, 개편, 새찬송가 시대를 마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통일찬송가가 한국교회의 일체감 형성에 기여한 바는 매우 컸다. 비로소 한국교회는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 것이다.

물론 찬송가의 통일을 최우선으로 하였기에, 내용면에서 아쉬움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 과제는 후일로 미루어 두게 되었다. 10년 전에 찬송가공회가 구성되어 통일찬송가의 남은 과제를 추스리게 되었으니, 이 역시 한국교회 연합운동의 결과이다.

진정한 한국적 찬송가로 거듭나려는 공회의 노력에 숱한 이론이 있을 수 있으나 마침내 이루어질 산고의 결과를 의심하지는 않는다. 

다만 찬송가가 발행되기 전부터 논의가 빈번한 판권에 대한 시시비비는 이의가 있을 수 있다. 만약 21세기 찬송가 발행과 함께 판권을 둘러싼 분쟁까지 낳게 된다면 한국교회에는 더없는 수치요, 부끄러운 기록이 될 것이다. 판권을 둘러싼 이해관계를 시급히 정리하고, 21세기 찬송가에 대한 희망을 나누는 것은 더없이 소중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21세기 찬송가에 대한 기대를 한국교회와 함께 모아내는 일일 것이다.

지난 7월 초, 공회의 초청으로 모인 교단장들은 곧 발행될 21세기 찬송가의 탄생을 함께 기뻐하였다. 또한 사전에 불거져 나올 판권문제에 대해 정리를 시도하였다. 즉 양대 연합기관인 대한기독교서회와 예장출판사에 출판권을 부여한다는 의견을 모았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1983년 통일찬송가를 발행하면서 지녔던 원칙을 유지하고, 다시 확인한 것이다.

그동안 통일찬송가 출판에 후속으로 참여해 왔던 일반출판사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나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찬송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다양한 모델과 판형으로 또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세련된 찬송가를 보급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신앙적 봉사이고, 사업적 성과였다. 이번 21세기 찬송가의 연구과정에도 적잖은 공헌을 했다니 크게 치하 받을 일이다.

그럼에도 찬송가 제작이란 출판사의 기술적 역량이나 자본의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책이 아니다. 1893년 찬양가가 처음 발행된 이래 여러 가지 이름의 찬송가는 모두 공교회를 통해 만들어졌다. 찬송가는 상품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선물이요, 신앙의 열매이다. 21세기 찬송가 역시 한국교회 전체의 거룩한 유산이요, 교회연합운동의 성숙한 결실이 아닌가?

중요한 것은 찬송가의 상품화 이전에 그 결실의 관리이다. 찬송가의 수요자는 모두 교회의 일원이요, 신앙공동체의 지체들이다. 수익을 목적으로 접근한 찬송가 발행 사업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얼마간의 지분과 수익에 불과하다. 따라서 출판사의 이해관계를 따져 21세기 찬송가의 순산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몇몇 출판인들의 손실을 넘어 전체 한국교회의 불행이 될 것이다.

교단장들의 합의는 의미있고, 이에 기초한 공회의 판단은 중요하다. 연합기관 두 곳에 출판을 맡기는 것은 이해관계에 앞서 전체교회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수익을 독점적으로 실현하는 만큼 경제적 판단에 앞서 현실적인 보급방안과 기존 찬송가 폐기에 따른 손실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거룩한 위임을 독점의 수혜권으로 삼는 순간 21세기 찬송가의 출판은 퇴색될 수밖에 없다.

21세기 찬송가가 한국교회에 주는 소박한 희망은 복잡한 우려보다 크고 무게 있다. 21세기 찬송가가 한국교회와 전체 교인들에게 진정한 축복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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