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인 삶은 어디로 흐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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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삶은 어디로 흐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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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9.01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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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호신부<성공회 서울대교구 교무국장>


사람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그것이 바로 ‘나’라고 착각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돈만큼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는가 하면 내가 입고 있는 옷, 나의 차, 나의 지위가 바로 ‘나’라고 생각합니다.

크고 화려한 교회의 건물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것도 아닙니다. 목회적으로 성공한 대형교회의 목사가 진실한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도 아니고 세상 사람들이 볼 때 많은 사회사업을 해서 성자처럼 보인다고 정말 속사람이 진실한 사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외적인 판단 기준에 눈이 현혹되어 진실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헨리 나우웬은 ‘영적인 발돋움’이라는 책에서 영적인 삶이란 우리의 ‘가장 깊숙한 자아’로 ‘우리의 동료 인간들에게로’ 그리고 ‘하나님께’로 향하는 발돋움이라고 했습니다. 영적인 생활이라는 것은 세 가지 방향이 함께 이루어 져야 합니다.

영적인 삶이란 첫째, 내 안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내가 입고 있는 모든 거짓의 옷들을 벗어 버리고 더 깊은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면 거기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자아는 너무 많은 일, 너무 소란한 소음, 너무 많은 생각과 계획들로 묻혀 있습니다. 그래서 나를 감싸고 있는 것들이 바로 나라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참 나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둘째, 우리의 이웃에게서 하나님의 얼굴을 발견하는 삶입니다. 나를 찾고 발견한 사람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사회의 문제는 무엇인가요?

모든 사람들이 자기와 가족 외에는 다른 사람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먹는 음식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딸 같은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며, 자기의 뱃속을 채우기 위해 친구의 우정, 인간관계의 신의, 양심은 너무 쉽게 포기합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런 일들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신앙을 가진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삶이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형상과 가치를 발견해 가는 것입니다. 영성이 깊어졌다는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느냐의 사랑의 폭의 문제이고. 하늘과 땅의 간격을 좁히는 일이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간격을 좁혀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셋째, 하나님을 향해가는 발돋움입니다. 성 토마스는 “어떤 사람의 의지가 선한 것을 좋아하면 그 사람은 선한 사람이고  악을 좋아하면 그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따라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간다면 우리는 영적인 사람입니다. 선한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나와서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고 하나님으로 마칩니다. 이것은 현재보다는 미래를 향한 지향성의 문제입니다. 이 땅에서 시작해서 하늘을 향해 가는 삶의 방향성이요 목표의 문제입니다.

지난주 8월 23일은 가을의 문턱인 처서였습니다. 처서가 되면 나무들은 더 이상 물을 빨아들이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나무들은 추운 겨울을 위해 자신들이 빨아 들였던 물을 토해내기 시작합니다. 자기를 비우는 것이죠. 여러분도 육적인 것을 토해내고 영적인 신앙의 열매가 더욱 알차게 맺는 가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외적인 것에서 자아를 찾던 노력을 잠시 멈추고 내면 깊숙이 들어가서 자아를 성찰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는 나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나와 똑같은 사람의 얼굴을 발견하는 것이지요.

세상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서 내 모습과 같은 사람의 얼굴을 발견하고 살아간다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아름다울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향해서 살아가고 있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참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은 때입니다. 그러나 내가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길 원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를 만나는 사람에게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 주는 것은 어떨까요? 필자도 나를 만나는 사람에게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며 이 한주를 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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