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설교에 깨달음을 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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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설교에 깨달음을 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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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8.2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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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엽목사<기독교정화운동 대표>


누가복음 21:20-22을 강해하게 되었다. 본문은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찌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찌어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니라” 인데 주석을 뒤져 보아도 동장 5절에 있는 말씀과 동일한 의미로써 주후 66년 로마의 타이터스 장군이 수십만의 군대를 이끌고 와서 3년 6개월 만에 예루살렘 성을 완전 멸망시켰다는 것 외에는 별 다른 것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외식에 빠진 예루살렘의 신앙에 대한 그리스도의 심판의 선언이다. 또 실제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역사적인 현실이다. 이것으로 어떻게 교인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어 신앙을 견고케 할 수 있을까 하면서 깨달음을 주시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랬더니 이런 깨달음이 왔다. 예루살렘성은 바로 우리의 마음이요 영혼의 성전이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하나님의 시온 딸로써 하나님의 기쁨의 도성이며 다윗성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예루살렘성처럼 기뻐 하신다. 그런데 왜 멸망의 형벌이 오는가? 권고받는 날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눅19:44) 죄와 악, 유혹의 덫, 정욕과 탐욕의 함정, 외식의 만연, 먹고 마시는 즐거움 등에 대하여 경계의 권고를 할 때에 외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이미 흑암의 권세(로마군대)에 둘러싸인 후에는 돌이킬 수가 없다는 것이다. 둘러싸이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첫째 물자공급(주식인 양과 밀)이 되지 않으므로 제사를 못 지낸다. 영적으로는 개인적인 예배가 이뤄지지 않는데 위(하나님)와의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의 깨우침과 맺어줌이 설교인데 그럴듯한 지식만을 주어 지적 만족을 은혜라고 오해하게 한다는 것이다(약2:19). 이런 곳에서 찬양은 이미 절망의 장송곡이나 다름없고 원망과 시비(분열)만 있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 구절의 유대에 있는 자들의 산상도주 권유는 자아의 2가지 의식이다. 이미 포위된 의식이 있으면 또 다른 의식은 산으로 가서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 산은 시내산이나 호렙산이기도 하지만 바로 너의 교회앞 자리가 산이라는 것이다.

거기서 기도하는 마음에서 도리키며 멸망의 저주를 피하라는(도망할찌며) 것이다.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지며-이미 멸망의 군대가 둘러쌀 때 우리는 즉각적으로 안다는 것이다. 둘러쌓이기 직전(징조가 보일 때)에 빨리 알아 차리고 하나님의 성(품)으로 나와서 멸망의 저주에서 나와야 한다. 이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막혀버리고 종말을 맞고야 만다.


결론은 우리 주변에 하나님의 형벌의 기운이 감돌거든 빨리 알아차리고 기도하며 자복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품으로 들어가자. 사랑의 하나님에게 어찌 버림을 당하랴! 우리 교인들은 기도를 많이 함으로 하나님께서 미리 인도 하시리라 믿는다 이다.

여기서 서술한 것은 잘 충분이 표현 되었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교인들이 조용하게 들으며 실감하고 심각하게 깨닫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는 무식하게 기도하는 나의 기도(5시간)에 대한 하나님의 상급이 아닌가 생각되어졌다. 더 깊은 영적 깨달음을 받는 종들이 많이 있음을 생각하고 부끄러움을 금치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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