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1세기 한국사회와 교회를 말한다-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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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1세기 한국사회와 교회를 말한다-신자유주의
  • 윤영호
  • 승인 2006.08.1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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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경쟁 신자유주의, 약육강식의 경쟁파도의 벽을 넘어라
▲ 신자유주의는 중앙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한 상태에서 기업간 경쟁이 이루어진다. 거대 다국적기업의 독점이 예상된다. 이는 빈부격차, 강대국/극빈국의 격차만을 늘이게 된다는 우려다.

 

최근 한국영화인들의 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자유무역협정인 FTA가 한국과 미국 사이에 진행되고 있다. 영화인들은 한국영화 퀘터제가 무너지면 결국 우리나라 문화산업이 망하게 될 것이며 종국에는 강대국의 문화종속국에 편입될 것이라고 성토하는 등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중문화를 선도하던 영화인들의 이같은 목소리가 대중들에게 끼칠 영향은 적지 않을 것 같다. 각종 산업분야의 협상이 정부팀에 의해 진행되고 있으나 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게 최근 언론의 보도내용이다. FTA에 대한 무성의한 준비와 저급한 수준의 지식 등 언론의 보도는 한 국가의 장래가 달린 이번 회의를 협상팀이 어떻게 이끌고 나갈지에 의구심을 들게 한다. 영화인의 반대, 협상팀의 부주의한 태도,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국민들의 반응 등 한국교회가 서 있는 지금은 이런 상황이다. / 편집자 주

FTA는 신자유주의가 팽창하면서 국경을 넘을 때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각 나라 정부가 법에 규정한 무역관련 조항을 신자유주의에 맞게 재조정하는 과정이 FTA인 것이다. 농축산물 등 우리나라 산업의 기초를 이루었던 분야가 외국에 개방될 경우 이른바 “국가경쟁력이 실추될 것”이라며 시민단체들의 강도 높은 비판이 이어지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반대로 일부 단체들은 “우리나라가 세계시장에 당당하게 나설 만큼 성장했으며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이번 자유무역 협정을 반대해서는 않될 것”이라고 다른 견해를 밝히고 있다. 여하튼 새로운 시대의 대전환기에 도달한 우리나라는 무엇을 선택해야만 하는 매우 중요한 상황에 처해있는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신자유주의는 매우 포괄적이어서 한 가지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확실한 것은 국가(정부)가 경제전반에 걸쳐 조정자역할을 했던 기존의 보호주의와는 상당히 다른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는 전망은 분명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역사시간에 배운 것을 회고해보자. 봉건제도가 몰락하고 자본주의가 발흥하던 시대의 상황은 한편으로는 발전을, 다른 한편으로는 참담함을 동시에 드러냈었다. 지리상의 발견으로 가장 이득을 본 사람은 당연히 상인들이었다. 땅 주인이었던 영주들은 지리상의 발견으로 해택을 볼 부분이 매우 극소했다. 농산물과 공업품의 물물교환만 있었을 뿐 부(富)의 축적은 상품을 만들고 이를 내다팔았던 상인들과 공장주인, 선박소유주, 은행가 및 대부업 종사자들에게서 일어났다. 그 시대를 주도할 새로운 신분이 생겼고 기존 상위계층은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같은 변화는 농업에 종사하던 농노들과 농민들(소작인)의 대도시 이주를 재촉했다. 농업으로는 생계유지가 점점 힘들어지자 공장이 들어서고 무역이 성행한 대도시 및 항구도시로 이주를 시작한 것이다. 70년대 우리나라 상황을 생각하면 된다. 이들은 자신의 기대와 달리 열악한 환경에서 쉬지 않고 일해야만 하는 암울한 삶을 맛보아야 했다. 역사를 통해 우리가 확인한 사실은, 새로운 사조가 시작됐다고 해서 모두에게 장밋빛을 선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국가경쟁력을 강화한다고 혹은 해친다고 하는 신자유주의라는 사조는 누구를 강하게 만들 것이며 반대로 누구를 악한 상황으로 몰아넣을 것인가 예상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사역이 비단 천국이라는 영의 세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하며 소망을 갖게 된다. 철저하게 노예로 지내던 삶을 기적적으로 청산하고 가나안 땅으로 이주하며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이스라엘의 민족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은 열방의 모든 나라 역시 이같은 언약 가운데 불려졌음을 계시하고 있다. 하나님의 새 시대는 인간이 부분적으로 혜택을 주고받는 것과 달리 ‘모든 백성’이 구원받는 혜택을 누린다는 얘기다.

오순절 성령체험 직후 나타난 신약성경의 증언은 이를 명확하게 설명해 준다. 사도행전 2장43~47절까지가 그 예이다. 개인의 소유라도 공동체를 위해 아낌없이 사용할 줄 아는 이기심(개인주의)의 극소화 현상이 비로소 나타난 것이다. 일부 학자는 이를 좌파적으로 해석하며 공산체제의 모델로 주장하는 부분이지만, 이는 결과만 보고 한 해석이다. 성령체험 직후 일어난 마음의 변화로부터 시작한 점을 의도적으로 누락시킨 것이다.

성경의 이같은 부분은 교회가 신자유주의 상황을 맞은 작금의 우리나라 현실 가운데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암시한다. 모두에게 장밋빛을 선사할 것 같았던 16세기~17세기의 자유무역주의는 결국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기폭제를 통해서 전 세계에게 엄청난 변화를 주었지만, 이 체제 역시 ‘영주/농노’와 비교되는 ‘자본가/노동자’ ‘상류층/하류층’등 양극화를 기본 구조로 한다는 점에서 발전이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발전이란 단지 물질의 풍요만을 기준으로 한 개념일 뿐이다.

여기서 한국교회가 당면한 문제의식은 바로 한국교회 성도들의 삶의 자리가 이 시대를 지나며 엄청난 변화를 겪을 것이란 부분에서 시작된다. 학자들에 따르면, 신자유주의는 소수의 부유층과 대다수의 빈곤층을 양산할 것이란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양극화가 무척 심각해 질 것이란 얘기다. 지난 90년대 후반기 IMF사태를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신자유주의가 뿌리내리도록 제반 조건들을 이미 만들어냈다. 소위 기구조정이란 이름아래 이루어진 대량해고, 명퇴, 국가기간산업의 민영화 추진 등은 신자유주의 연착륙을 위한 우리정부의 고뇌에 찬 정책이었다. 이를 통해서 국제통화기금(IMF)이야말로 신자유주의 홍보단체라는 악평까지 받았었다.

따라서 최근 한국사회에 나타난 양극화문제는 현 정부의 정책실패의 사례로 설명되고 있지만, 거시적으로 볼 때 신자유주의의 단면으로 보는 것이 맞다. 특히 현재 정부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작은 정부’는 그동안 조정해왔던 정부의 경제정책을 최소한다는 것으로, 이는 경제를 민간기업의 경쟁에 맡기겠다는 표현이다.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는 다국적기업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바로 이 부분이다. 관세철폐, 민간기업의 자유로운 시장경쟁을 정부가 조정해서는 않된다는 주장인데, 이는 어른과 어린이를 동일한 출발선에서 100m달리기를 하자는 것과 똑같다.    

한국교회는 시대적 대전환기를 맞았다. 한국교회는 현재 안으로는 성장침체라는 오래된 문제와 씨름하며 타개책을 만들어 내느라 연일 고심이다. 1,000만 신앙인이 800만으로 줄어들었다는 통계를 접하며 위기의식을 공유하면서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이벤트 만들기에 열중하는가 하면 저급한 신앙관이 생기든 말든 외국의 유명 부흥사를 초청해 ‘물질축복 성회’ ‘비즈니스성공축복’ 등 믿음과 물질축복을 동일시하는 집회를 연다고 북새통이다.

이런 분위기와 비슷한 또 다른 축으로는 미국 대형교회 목회자의 잇따른 한국방문과 컨퍼런스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저서는 우리나라 기독교서점을 강타하면서 성경과 함께 가장 많이 읽히는 도서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 즈음에서 우리는 한국교회가 신자유주의로 시름하는 일반 사회의 몸살을 과연 어느 정도나 이해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 체제 속에서 가장 혜택을 누리는 곳이 대량의 자본과 기반시설을 소유한 다국적기업이기 때문이다. 한 국가의 정부를 좌우시킬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가진 다국적기업 가운데는 최근 미국의 군사전략을 공동수행하며 세계의 평화를 지킨다는 군수산업체가 상당수 들어있다.

기업의 운영목적이 애국이 아니라 이윤추구라면, 이들이 주도하는 신자유주의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한국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들의 생활기반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정도로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한국기독교의 패러다임에도 큰 변화를 몰고 올 것이 분명하다.

소수의 대형교회와 다수의 미자립교회로 오랫동안 경쟁체제를 즐겨온 한국교회로서는 최근의 신자유주의 상황에 대해 여전히 무감각할지도 모를 테지만, 시대변화 속에서 고통을 감수해야할 성도들의 입장으로 볼 때 이들에게 교회가 해주어야할 위로와 격려는 무엇일지 그리고 교회가 할 일이 다른 부분에서는 없는지 깊이 통찰해야할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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