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1세기 한국사회와 교회를 말한다-노블리스 오블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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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1세기 한국사회와 교회를 말한다-노블리스 오블리주
  • 윤영호
  • 승인 2006.08.1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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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없는 가식적인 나눔 때문에 되래 비난받아"
▲ 우리가 보낸 북한구호 물자를 앞에 놓은 북한당국자들. 하지만 의례적인 구호라서 복음화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한 기업의 성장은 과연 총수의 능력 때문만 일까. 상품을 구입할 소비자가 없어도, 그리고 생산된 상품을 내다팔 시장과 운송수단이 없어도 기업성장은 가능할까. 경제계에서 오랫동안 논쟁거리로 남아있는 ‘기업성공 원인에 대한 탐구’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놓고 진행되는 또 다른 논쟁의 해답 때문에 더욱 진지하다. 이같은 흐름은 기독교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교회의 사회적 책임범위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다. 세간에 성공한 교회로 일컬어지는 대형교회급 교회들의 사회적 책무 또한 성공기업의 그것과 결코 달라서는 않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인 것이다.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한 기업과 영적공동체 확립을 위한 교회는 정말로 ‘똑같은 형태의 사회적 책무’를 이행해야 만 하는지 진지한 응답이 필요한 시점이다. / 편집자 주


미국 최대 갑부 워렌 버핏이 자신의 재산 85%에 해당하는 370억 달러(35조원)를 빌게이츠재단 등 5개 재단에 기부할 뜻을 발표하자 세계유명인사와 부호들의 기부행렬이 잇따르고 있다. 언론은 이를 ‘버핏효과’라고 부르면서 이들의 ‘기부’ 앞에 ‘위대한’이라는 수식어를 쓰고 있다. 버핏의 기부금액은 역사상 최대액수로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내총생산(GDP)보다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재산의 절반을 성룡재단에 기부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더 도울 것이라고 지난 29일 영화배우 성룡이 발표했으며, 세계적 컴퓨터 기업인 ‘애플컴퓨터’의 최고경영자는 IT부호들과 함께 대규모 자선단체를 설립할 것이라고 해 주목을 받았다.

‘엄청난 기부의 시조’로 이름을 남긴 빌 게이츠의 생각은 이렇다. “자선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2년 뒤 일상적인 경영활동에서 물러날 것이다. 내가 벌어들이 거대한 부(富)에는 사회적 책임이 따르며 이를 사회에 되돌려 주는 일에 매진할 것이다. 부자들은 사회에 특별한 빚을 지고 있기 때문에 상속세를 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는 부시 대통령이 추진하고 있는 상속세 폐지에 대해 반대입장을 나타내며 기업인의 사회적 책무를 촉구하고 있다.


빌 게이츠 “부자는 사회에 빚을 졌다”

부호들의 기부행렬은 미국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지난 4월11일 차이나데일리지(紙)는 전통적으로 사회공헌에 인색하기로 유명한 중국 부호들의 이례적인 기부행렬을 주목하며 “지난 1년 동안 이들이 사회에 기부한 금액이 37억5천만 위안(4,500억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중국의 50대 부호들의 1년 기부액과 관련, 중국 부유층 전문잡지인 ‘후룬바이푸’(胡潤百富)의 보도를 인용한 차이나데일리는 이들의 기부액이 지난 2003년 4월부터 2005년 3월까지 2년 간 기부한 금액(13억5천만 위안)과 비교해도 약3배의 육박하는 금액이라며 상승세를 소개하고 있다. 짠돌이 중국 갑부의 잇따르는 기부행렬의 변화가 우리에게 적지않은 교훈을 준다.


우리나라는 사실 중국보다 기부문화에 더 빨리 적응하고 있다. 호두과자 원조 할머니의 구제와 평생 폐휴지를 팔아 저축한 돈을 장학금으로 쾌척한 어느 노인, 어느 대학 앞에서 노점상하던 상인의 장학금 전달 등 일반 국민들 사이에 파고든 기부문화는 사실 아시아에서 높은 도덕수준을 보여준다. ‘정치적 압력’이라는 다소 유감스런 수식어가 따라 붙기는 하지만 삼성그룹의 8,000억원 사회환원과, 엄청난 금액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현대그룹의 기부금은 우리나라 기업의 사회환원이 자연스럽게 정착되어야만 하는 시대적 상황을 보여준다.


중국 부호들 사회환원 3배 증가

성공한 기업인과 부호들의 부(富)사회환원 형태는 다양하다. 소외층 그룹에게 직접 전달하는 것에서부터 보호시설(保護施設)의 설립과 복지재단 운영 등이 그것이다. 장학재단도 그중 하나이다. “사회고위층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최근 진행되는 부호들의 기부문화를 설명하는 현대어이다. 이 단어는 기업성공에 대한 논쟁(기업의 극대화된 이윤이 사회공동체에게 이익을 준다 VS 기업성공을 허용한 사회공동체에 편익을 제공해야 한다)가운데 편익제공을 주장하는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초기 로마시대 왕과 귀족들이 보여준 투철한 애국심과 명예를 수반하는 공공정신에서 비롯됐다. 가장 비근한 예는 전쟁참전. 로마고위층은 전쟁참전을 공공을 위한 매우 자랑스런 것으로 여겼다. 로마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율이 500년 간 1/15로 감소한 것은 계속된 전쟁에 참전한 귀족이 죽어간 이유 때문이다. 로마가 건국이후 세계의 맹주로 자리잡은 배경에는 이같은 지도층의 환원의식이 있었다는 것이 학자들의 생각이다.

제1,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녔던 명문 이튼칼리지 학생 중 2,000명이 전사했다고 한다. 고위층 자제들의 전쟁참전 결과였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1950년부터 약3년 동안 미군의 장성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에서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그 가운데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은 사람은 35명이나 된다. 당시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의 아들은 야간폭격 임무수행 중 사망했으며 대통령이던 아이젠하워의 아들도 육군 소령으로 참전했었다. 미국만이 아니다. 중국군의 장성 역시 전쟁 중 전사한 아들의 시신수습을 포기하도록 지시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 이야기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주’로 압축되는 부유층의 사회적 책무가 꼭 돈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교회, 사회환원 방법 깊이 생각해야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기업인의 사회환원 추세는 영적인 나눔공동체를 자처하는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교회는 사실 남북적십자사 대북물자 지원의 1/5을 담당할 정도로 활기찬 구제활동을 벌이고 있다. 교회이름만 달지 않았지 일반 구호단체들의 대부분은 기독교와 밀접한 관계를 맺는 곳으로, 이 단체들이 거둬들이는 모금은 대개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것들이다.


지난해 개최된 ‘한국기독교사회복지 엑스포’는 열심은 내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그동안의 기독교복지사역을 네트웍 하려는 최초의 시도인 것이다. 현재 만들고 있는 한국기독교사회복지 백서가 완성되면 증명되겠지만 ‘데이터’로 표현되는 기독교의 사회환원 혹은 사회적 책무는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를 인정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왜 그럴까. 크리스찬아카데미 선임연구원 김진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교회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작은 부분이기는 하지만 우리사회의 어떤 기관보다 많은 물질을 나누고 있다. 총액을 따져보면 생각보다 훨씬 큰 액수일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기독교는 나눔과 섬김의 종교라기보다는 이기적이고 보수적인 집단으로 평가되고 있다. 나눔보다는 자신을 내세우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한다고 하지만 드러나는 것은 교회의 이름이다. 교회가 한낱 사회복지 기관이 아니라는 사실을 되새긴다면 나눔을 하나의 영성으로 생각하고 비움의 영성을 실천해야 할 것이다.”

김진박사는 교회가 하는 구제와 나눔이 사회에 파급되게 하려면 주는 자의 마음자세를 고쳐야 할 것이라고 충고한다. ‘물질을 나눈다’는 것을 ‘마음을 나눈다’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비움의 영성’으로 표현했다. 물질을 나누어서 생겨진 빈공간을 사회의 칭찬으로 채우려는 것은 나눔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우리는 막스 베버가 주장한 천박한 자본주의의 실체를 다시 회고할 시점이다.

이익에만 집중하는 기업의 자세를 천박하다고 주장한 그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가 지배하는 자본주의야 말로 건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록 낙관적인 전망이었지만 막스 베버는 청교도들의 근검절약과 나눔의 삶이야말로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요체라고 강조했던 것이다. 신앙대로 하지 않는 그 어떤 나눔도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가시적 나눔과 다르지 않다는 교훈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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