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죄악성과 연결되어 있음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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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죄악성과 연결되어 있음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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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7.2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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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하나님의 경고인가 환경파괴의 결과인가?

김상록목사<군산성실교회>


기독교인들은 다른 관점에서 자연재해를 바라봐야 한다. 즉 주로 밤과 새벽에만 비가 내렸던 사실, 곤히 자는 시간이었던 사실, 깨어 있지 못한 시간대이었음을 주목해야 한다.

요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밤과 같은 시간대라는 느낌이 든다. 이번 재난은 영적으로 어두워진 결과이다. 우리의 문화, 생활, 생각들이 너무나 인간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밤에 도적같이”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태풍 피해가 해마다 반복되기 때문에 이런 피해에 둔감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좀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아직도 게릴라성 폭우 앞에 인간이 쌓은 과학문명이 얼마나 초라한가를 절실히 깨닫지 못하고 있다. 창조주 앞에서 인간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알지 못하고 있다.

한 가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살전 5:2)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살전 5:6)라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밤과 같은 요즘 시대, 우리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주님이 언제 오실까, 둘째는 나는 언제 죽는가라는 질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날이 언제 올지 모르니 대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 죽을지 모르니 주님 앞에 가서도 부끄럽지 않도록 대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자연 재해가 인간의 죄악성과 연결되어 있음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인간의 탐욕이 빗은 자연환경 파괴가 더 큰 화를 자초했음을 뉘우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3)고 말씀한다. ‘평안하다’는 말은 내적 안정을 뜻한다. ‘안전하다’는 말은 외적 안전이다. 하지만 함정은 늘 안전한 곳에 숨겨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정부 중앙합동 조사단의 조사결과 태풍 에위니아로 인한 피해는 사망자수 15명, 실종자수 26명 등 모두 41명이며, 또 이재민은 1천6백여 세대 2천9백 여명이 발생했고, 주택은 1천8백여 채가 물에 잠기거나 파손됐다. 수마가 할퀴고 간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성경은 수마와 수해를 악마로 비유했다. 가옥 침수, 진흙으로 범벅이 된 가재도구들, 차량이 뒤집힌 모습, 산사태, 축대 붕괴 등 인간의 무력함을 새삼스레 절감한다. 우리는 지금 불지옥이 아닌 물 지옥 현장을 목격했다.

많은 사람들은 성난 물결을 바라보며 공포에 떨었다. 하지만 홍수는 정녕 하나님의 심판이 아닌 자연의 것, 인간이 자연을 괴롭힌 결과이다. 자연의 분노이며 자연의 재앙이다.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이 그 자연의 소리 앞에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이 전혀 없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은 생각보다 더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도 우리는 자연의 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면 자연이 우리와 함께 창조주를 찬양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이 분노하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의 위기는 곧 하나님의 기회이다.

우리가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면 비로소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믿음이 생긴다.  희망을 필요로 하는 세계에는 그리스도야말로 끊임없는 희망의 원천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희망, 인류의 해답이다. 누구든지 그분을 만나면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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