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삭둥이 아들, 하나님께서 키우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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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삭둥이 아들, 하나님께서 키우셨죠”
  • 김옥선
  • 승인 2006.05.10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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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마비 아들 사회복지사로 키워낸 구세군마포교회 강명희 부교

임신7개월만에 태어난 맏아들 종인. 어렵사리 낳은 아들은 2돌이 지나서 겨우 설 수 있었다.

종인은 선천성 뇌성마비를 가진 장애아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됐던 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됐지만 무엇 하나 아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빠듯한 살림살이는 불편한 몸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조차 내팽개쳐 두도록 직장으로 사회로 삶을 내몰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의 영혼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겼던 강명희부교(구세군마포교회·김종구사관)의 간절한 기도는 아들에게 꿈과 소망을 심어주고 미래를 향한 계획을 갖게 했다.

올해 한국기독교가정생활위원회의 ‘장한 어머니’상을 받은 강명희부교는 선천성 뇌성마비(지체장애3급)를 갖고 태어난 박종인씨를 자신보다 더 어려운 지체를 돕는 사회복지사로 키워냈다. 내 몸하나 가누기조차 힘들었던 종인씨는 어머니의 한결같은 지지와 믿음으로 일반대학 졸업장외에도 사회복지사 2급 자격까지 취득해 현재 구미 장애인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당당히 일하고 있다.

연거푸 수줍은 미소로 자신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면서 송구스러워 하는 강명희부교.

“난 아무것도 한 것이 없어요. 하나님의 긍휼하신 손길이 아이를 믿음 안에서 강하게 성장하게끔 했습니다. 만약 우리 가정이 부요했다면 오히려 종인이가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키울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루하루 살기 급급해 아이를 혼자 둘 수 밖에 없었던 시간들을 통해 아이가 지구력이 생긴 것 같아요.”

강명희부교는 작년에 사별한 남편과 함께 35년간 봉제일로 생계를 유지해왔다. 근면성실한 부부는 각고의 노력끝에 봉제공장을 경영하기도 하였으나 거듭되는 실패로 아침부터 밤12시까지 일해야 겨우 먹고 살수 있었다.

때문에 아이를 봉제공장 한 켠에 둘 뿐 곁에만 있어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아이의 회복을 위해 애정을 쏟으며 눈물로 기도하는 한나와 같은 어머니였다.

“건강한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주위에서 보면서 참 많이 애가 탔습니다. 때문에 저도 처음에는 이것저것 아이에게 욕심을 부렸어요. 약도 먹여보고… 하지만 신경질환이 하루아침에 낫게 되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그렇게 발버둥을 치면서 제 자신이 답답하니까 아이에게 짜증내게 되고 아이는 나름대로 저 때문에 더 시달리는 것 같았어요.”

나날이 어려워지는 가정형편,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아이의 병, 나날이 좁혀오는 삶의 무게는 하나님을 향해 원망으로 표출됐다.

하지만 기도를 하면 할수록 ‘지금 처해 있는 모습이 최상의 것’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강부교는 결국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예비해 두신 큰 선물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강부교는 종인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 혼자 설 수 있도록 하는 일임을 자각하고 예수님께서 걸으셨던 고난의 길을 생각하며 아이에게 강인함을 훈련시켰다.

“기어서 가더라도 혼자서 가야 해. 가야할 길이니까 꼭 가야 해.”

엄마의 모진 목소리에 아이는 혼자서 일반 초등학교를 다녔다. 재활원에 맡길까 생각도 해 봤으나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의 손길로 안아주시는 것처럼 아이들은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재활원 시설이 아무리 좋은 게 있어도 내 자식 하나한테 손이 다 안가서 맡기는 것인데 그 많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일일이 손이 가겠냐는 거다. 아이들 얼굴 하나 둘 쳐다봐도 사랑을 못 받아서 그런가 기름지지 못하고 부스스해 보였다는 강부교. 결국 그는 어떻게든 내 손으로 아이를 키우겠다 다짐한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울 때 늘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하실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믿는 마음으로 기다리면 일반인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갑갑히 여기지 말고 기다리십시오. 기다리면 아이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대신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화려하고 예쁜 모습이 아니라도 그 근사치까지 할 수 있습니다.”

강부교는 종인씨가 스스로 구상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도록 그림을 그리도록 했고 종인씨는 아버지의 권고로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

컴퓨터는 종인씨에게 그래픽이라는 것에 눈뜨게 했고 당시 유일하게 장애인들을 위한 컴퓨터 교육을 실시한 이천재활원에서 캐드(CAD)를 배우게 됐다.

1년간의 교육을 마치고 본격적인 그래픽 공부를 위해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일반인보다 많은 시간을 요하는 종인씨는 학원의 소일거리를 도와주기로 하고 수업을 더 들으며 집중해 공부해 갔다.

“하루4시간만 자면서도 컴퓨터에 몰입하는 것을 보고 무척 대견스러웠습니다. 장애를 가졌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많은 시간을 요하는 것 뿐입니다. 많은 시간동안 준비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세밀하게 일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아무리 공부하고 싶은 게 있어도 건강이 허락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강부교는 종인씨를 헬스장에 보내기 시작했다. 지체장애 특성상 팔이 곧잘 빠졌으나 운동을 시작한 후부터는 오히려 근육이 신경을 잡아줘 건강이 빨리 회복되었다.

그렇게 회복된 건강은 종인씨에게 졸업장을 취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아무리 장애가 있다고 하더라도 교육을 받지 않고서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아버지의 설득으로 졸업장은 있지만 자주 아파 결석했던 중학교과정부터 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까지 무난히 합격했다. 게다가 29세 때 대학입시를 치룬 결과 중부대 멀티미디어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몸의 한 부분이 아프면 다 아픈 법입니다. 형제간의 우애가 얼마나 각별한지 다 하나님께 받은 복이지요.”

온돌없는 단칸방에서 5식구가 함께 살면서 싫던 좋던 서로를 용납하며 지냈던 형제들은 남다른 배려심을 갖고 있다. 온돌보다 더 뜨끈뜨끈한 형제들의 우애는 종인씨의 학업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진학을 포기하고 학자금 밑천을 쏟아부었던 여동생, 다니던 학교를 포기하고 종인씨와 함께 다니기 위해 중부대로 편입한 막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했던가. 강부교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그 손길만을 의지해 나갔을 뿐인데 가장 좋은 것을 허락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고백한다.

강부교는 종인씨를 통해 장애아를 기르는 많은 부모들에게 희망이 되었으면 한다고 전한다.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 아이를 하나님 손에 온전히 맡겨드리니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됐던 것.

그리고 오직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기도와 인내라며 앞으로 종인씨 앞날에 더 크게 일을 행하실 하나님을 믿는다며 기대에 찬 미소를 드러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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