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식구(食口)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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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식구(食口)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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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5.1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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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찬목사<초동교회>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부모님들은 왜 너희들을 사랑하실까?” 선생님이 기대한 답은 “우리들이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요”였다. 그런데 1학년 어린 학생의 대답은 천연덕스러운 말투로 던진 “그러게 말입니다”였다.

어른들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답이다. 가만히 이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다보면 배꼽을 잡고 웃게 된다. 한편 이 짧은 교실 안 풍경 이야기에서 이 시대 세대 사이의 문화와 생각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한다.

우리나라는 가족을 부르기를 “식구(食口)”라 한다. 함께 한 상에 둘러앉아 밥을 나누어 먹는 관계로 가족을 이해한다. 농경사회의 대가족제도의 훈훈하고 정감어린 식탁이 그려진다.

보글거리는 된장찌개, 시원한 김장김치, 싱싱하고도 풍성한 쌈, 따끈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흰밥, 여기에 몇 가지 밑반찬이 곁들여져 왁자지껄 이야기꽃 피우며 식사하는 3대가 어울린 한 가족을 그림 그려 볼 때, 여기에서 따사함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다.

고향의 밥상 모습이다. 그런데 불과 20-30년 사이에 우리는 이 정겨운 밥상공동체를 잃어버렸다. 밀려온 산업화 물결과 핵가족제도, 도시화와 아파트 문화의 개인주의적 성향이 수천 년 동안 우리 민족의 삶을 이끌어 왔던 삶의 습관을 바꿨다.

컴퓨터 채팅으로 올빼미 체질이 된 자녀들에게 농경사회의 새벽을 깨우는 관습이 남아있는 부모 세대는 ‘괴물’로 비쳐질 것이라고 정진홍교수는 말한 바 있다.

과연 오늘 우리 시대에 ‘식구로서의 가족’은 남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가 미국에 살고 있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면 아들은 전화요금을 누가 내는지부터 묻는다고 했다.


아들은 자신이 요금을 부담해야 한다면, 용건만 간단히 말하고 빨리 끊으라고 재촉하고, 아버지가 요금을 낸다고 하면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말하며 오래 통화 하더라고 했다. 토인비가 1970년대 초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한국의 가족제도가 부럽다”고 말했다.

토인비가 한국의 대가족제도를 부러워하였던 것은 어울려 산다는 현상만이 아니라, 그곳에 어른이 있어 질서가 유지되고 가르침이 이어지며 효도가 있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의 유대와 질서였다.

그런데 어느 사이 우리 사회는 세계의 석학이 부러워하였던 것을 다 버린 것 같다. 가족이라는 관계가 깨어졌다. 식구(食口)를 잃어버렸다. 어떻게 된 것일까? 요즈음 이 시대를 A.C.시대라고 부른다. After Computer의 약자이다. 방마다 TV, 컴퓨터가 켜진다. MP3로 무장한 아들딸과 대화 한 번 하려다가도 사용하는 말들의 의미를 몰라 결국 ‘따’ 당하고 만다.

컴퓨터 게임에 열중한 아들은 방해하지 말라고 불평한다. 응접실에서 대형 화면의 TV로 DVD영화가 상영되고, 안방에서는 위성 수신으로 드라마가 방영된다. 엘빈 토플러가 예고한 제 3의 물결 시대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문화의 혜택을 준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편리함을 준 대신 가족 간의 만남과 대화를 빼앗아 갔다. 세대간의 깊은 단절의 벽을 쌓아 올리게 하였다.

식구(食口)를 잃어버리면서 이 사회는 각박해지기 시작했다.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베푸는 온정을 눈을 씻고 찾으려 해도 보이질 않게 되었다.

잃어버린 식구(食口)를 찾는 일, 하루에 한번이라도 함께 나누는 밥상공동체를 회복하는 일, 이 일이야말로 온갖 죽임의 문화로 병들어가는 이 사회를 살려내고 단절된 세계에서 외로워하는 사람들의 삶을 풍성케 하는 생명운동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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