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때를 준비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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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때를 준비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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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6.05.1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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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목사<의왕중앙교회>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사용하신다. 성경의 원리가 그렇다. 준비되지 않은 자를 사용하신 흔적을 성경에서 한번 찾아보라. 쓸데없는 수고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 번도 준비되지 않은 자를 사용하신 흔적조차도 없다.

사람만이 아니라 시대도 그렇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있다. 미성숙한 때를 급하게 사용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선순위를 뒤집지도 아니하신다. 당신이 정하신 순서와 원리에 입각하여 스스로 준법하신다.

하나님의 천지 창조의 역사를 보라. 창조의 역사의 장을 여실 때에 무엇이 목표인지를 알 수가 없다. 전혀 동요하심이 없이 질서 있게, 가장 기초적인 것부터 시작하여, 한 단계씩 상승시켜 창조해 가신다. 마지막 날에 가서야 하나님의 진의를 알 수가 있다.

창1:26에 가서야 명확해 진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을 지으시되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지으셔서 영광 받으시기 위하여 창조의 역사를 시작하신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26절 이하에 도달하기까지는 창조 본래의 목적에 대하여 내색도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질서는 그렇다. 하나님이 표현하지 않으시는 뜻을 사람이 어찌 알겠는가.

하나님은 때가 차기까지 조급해 하지 않으신다. 노아의 때가 그렇다. 그리고 택한 노아를 통하여 얼마나 지루하게 뜻하신 일을 이루어 가시는 가를 보라. 비로소 때가 찼을 때 하나님의 진노는 폭발한다. 누구도 하나님의 진노를 거두시게 할 자가 없다.

그 진노가 시작되기 전까지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외치는 진노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알려고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외치는 자를 어리석은 자로 치부해버린다. 여전히 해가 지고, 해가 뜨며, 태양은 찬란하게 빛이 나고, 삼라만상의 조화가 어김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그 때가 차기까지 인내하시는 하나님을 비웃는 노아 시대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그들이 혹 내가 아닐까? 우리가 아닐까?

때가 차서 쏟으시는 하나님의 분노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공의에 대하여, 진노하심에 대하여 항변할 수 없다. 주님은 그 만큼, 넘치도록 그 때를 참아 기다리시며, 그 때를 피할 수 있게 하시려고, 끊임없이 애쓰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에 대하여 어리석게도 불평하고, 문제를 제기하려고 시도한다. 하나님의 때가 있다. 준비된 자는 그 때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준비된 자에게는 그 날은 저주와 두려움이 아니라 복의 날이기 때문이다.

노아는 하나님의 진노의 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노아는 그날을 슬퍼했을지는 혹, 몰라도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그때 노아의 속내를 성경은 설명하려고 하지 않지만 120년이나 하나님의 심정을 대신 토했던 노아는 하나님이 방주의 문을 닿으시던 날의 심정이, 회개하지 않고 완고한 예루살렘을 보고 우시던 주님의 심정이 아니었을까?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창7:16하) 하나님은 방주의 문을 손수 닫으셨다. 하나님의 때에 인간의 어설픈 감정이나 애고가 발동하지 못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자물쇠가 아니겠는가? 

하나님의 때가 이르기까지 주님은 애를 태우신다. 당신이 잘못하여 우리가 벌 받게 된 것처럼 애태우시고, 당신의 사람들을 동원하셔서 뜻을 전하시고, 회개를 강력하게 촉구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아버지는 단호하시다. 누구도 그 앞을 가로막아 설자가 없다.

탱크 위에 서서 소련의 폭력과 마주섰던 러시아대통령 엘친을 떠올리거나 혹은 중국 천안문 사태 때에 탱크 앞에 부동의 자세로 서있던 자유청년의 그림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공산당의 폭력을 막아설 자가 혹 있어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 수는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의 때를 가로막고 나설 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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