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바로의 건축문양이 담긴 돌부적이 역사적으로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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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바로의 건축문양이 담긴 돌부적이 역사적으로 증명
  • 승인 2001.08.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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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 6장의 기록처럼 여리고성이 이스라엘에 의해 포위되었던 사건은 현대 고고학 발굴단이 Tell es-Sultan에서 조사한 바로는 입증되지 않았다는데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Tell es-Sultan, 즉 구약시대 여리고가 있던 지역의 제Ⅳ 도시와 연결된 무덤들은 주전 1400년대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것은 1446년 출애굽 사건이 있었던 때와 유사한 것이었습니다. 수년간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서 연구한 결과 John Garstang은 이 공동묘지의 무덤에서 많은 돌 부적들을 발견해 냈습니다.

이것들은 애굽의 AmenhotepⅢ세(1412~1376 B.C) 이후의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거기에는후기 바로의 건축 문양이 담긴 돌 부적이 없었습니다. 제Ⅳ 도시의 멸망이 13세기 중엽에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 현대 고고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AmenhotepⅢ세와 RamsesⅡ세 사이에 있었던 많은 바로들이 통치하던 중에 돌 부적은 없었던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더욱이 이 공동묘지에서는 15만 조각의 항아리 깨진 것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질그릇 한 조각만이 미케네(Mycenean) 문화의 형태였습니다. 미케네 문화가 팔레스틴에 도입된 것은 1400년 이후이기 때문에 그 공동묘지가 1400년 경 폐지된 것이 아니라면 제Ⅳ 도시에서 미케네 문화의 흔적이 상대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은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Kathleen Kenyon의 Tell es-Sultan에 대한 연구는 Garstang의 제Ⅳ 도시와 무너진 성벽을 같은 것으로 본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성벽이 무너져 땅 속에서 발견된 질그릇 조각들은 1400년 이전의 것으로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현상이 서바나의 Avila 성이나 불란서의 Carcasonne 성에서도 찾아집니다. 그 성들은 우리들 세대에 일어난 지진으로 평지가 되었지만 이 성들은 수백 년 전에 수축된 것으로 우리 세대에 쌓은 증거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Kenyon이나 Vincent같은 이들도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은 1250년 이전의 것으로 주장하고 있지 않으므로 여호수아 6장의 여리고성 멸망은 역사적 사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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