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선지자
상태바
이 시대의 선지자
  • 운영자
  • 승인 2006.02.15 15: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병금 목사<강남교회>


최근의 황우석 교수 사건이나, 윤상림 법조 브로커 사건 등 우리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얼굴이 화끈거리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언젠가 탄로날 것이 뻔한 일들이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게 벌어졌는지 아직도 의아스럽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에 허술한 면이 적지 않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헛점 속에서 사람들은 일단 성공하고 보자는 ‘성공제일주의’의 유혹에 쉽게 빠져든다. 1년 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대대적인 수능고사 부정행위 또한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 예에 불과하다.

올해는 엄격한 제재조치로 인해 적발된 부정행위 건수는 줄어들었다고 하나, 이미 젊은 청년들에게까지 만연된 성공제일주의, 출세지향주의마저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심각한 병폐들인데, 사회는 그렇다 치고,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교회’의 형편은 어떠한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운, 이 시대의 제사장이요 선지자이다. 그러므로 병든 세상을 치유하며 어두운 세상에 밝은 빛을 비추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요, 존재의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이 땅에서 펼쳐야하는 교회가 그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교회마저도 성장제일주의에 매몰되어 세상과 똑같은 가치 기준으로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있지는 않은가? ‘교회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몇이나 될 지 모를 일이지만, 규모컴플렉스, 성장컴플렉스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이 한국교회의 현주소임은 비기독교인들에게 먼저 지적하고 있는 바이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작 그리스도인들은 한국교회에 만연되어 있는 이러한 풍조가 대단히 비성경적이며 반성경적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마다 ‘큰 교회 역할론’을 내세우며 ‘성장제일주의’에 매몰된 자신의 모습을 정당화한다면, 그리고 여전히 교인수와 교회규모를 기준으로 교회를 판단한다면, 예언자적 사명을 가진 교회는 세상을 향해서 어떠한 말도 꺼낼 수 없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던진 메시지는 철저한 자기 희생을 통해서였지 세력을 과시함을 통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오늘날 교회는 예수의 모습을 버리고 있지나 않은가? 만일 오늘 한국교회를 해부하여 공개한다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서 부끄럼 없이 설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다. 성공제일주의가 빚은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한국교회는 여론에 편승해 그들을 손가락질 하기 전에, 먼저 자기 갱신의 채찍을 들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주님께 인정받는 길은 ‘성공’에 있지 않고, ‘섬김’에 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통해, ‘성공’한 제사장이나 레위인보다, ‘섬김’을 실천한 사마리아인을 신앙의 모델로 제시하며 “가서 너도 이와같이 하라”고 말씀하셨다(눅 10:37). 교회는 그 시대의 역설이며 선지자이다. 세상 풍조를 추종하거나 방치해서는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없다.

이제라도 교회는 이 시대의 선지자임을 자각하고 자기를 비워 이 민족과 역사 그리고 이웃을 섬기는 교회로 나서야 한다. 이 일에 나서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심판하듯이 우리도 심판하실 것이다. 우리 모두가 말씀으로 깨어서 이 시대의 선지자로 설 때, 교회는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몸이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이 남아있지는 않은 것 같다. 속히 깨어 기도해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