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천8백만 국민 모두가 기독교인이 되길 꿈꾼다”
상태바
“4천8백만 국민 모두가 기독교인이 되길 꿈꾼다”
  • 현승미
  • 승인 2005.11.09 14: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개월간 전국 누비며 전도활동 펼친 박치영 안수집사

초여름의 더위가 막 시작될 무렵 소형 라보 탑차 한 대가 강화대교 앞에 서서 무심히 지나치는 차들을 향해 활짝 웃어 보인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이웃을 사랑합시다’라는 문구가 선명히 적힌 탑차의 앞면에는 예수님이 길 잃은 양을 찾은 모습이, 후면에는 예수님이 어린아이들을 안으려 하시는 모양의 성화가 그려져 있다.


멀리서 봐도 한 눈에 전도차량임을 알 수 있게끔 양면에 성화를 그려 넣은 박치영 집사(믿음교회․담임:윤주영목사)의 제 1호 전도차량의 스피커에서는 연일 복음의 메시지가 흘러나온다.                                        ▶ 6개월간의 전도여행 일지

                                               `나는 즐겁고 행복한 전도자`


복음만이 행복한 살길
2004년 4월 19일 드디어 제 1차 전국순회전도를 위한 첫 발을 내딛었다.


“우연히 해외 출장을 가던 중 기내를 소란스럽게 만든 한 아이의 서러운 울음소리를 듣게 됐습니다. 알고 보니 그 아이는 영국인 부모에게 입양돼 가는 슬픈 사연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제가 그 아기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직 기도밖에 없었습니다.”


출장업무가 끝난 후에도 웬일인지 그 아기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는 박집사는 10여 년 전 전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겠다고 소원했던 자신의 기도를 떠올렸다. 황폐화되어 가는 사회가 희망의 찬가를 다시 부르기 위해서는 전국 방방곡곡에 복음이 전해지는 길 뿐. 그것만이 무너진 도덕과 가정을 바로 세우고 행복한 살길이라 생각한 그는 일단 회사에서 6개월 휴가를 얻어냈다.


“막상 실천에 옮기자니 경비도 만만치 않고, 혼자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전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고 하나님을 붙잡고 매달리는 방법밖에 없었지요. 다행히 제가 출석하는 교회의 담임목사님께 상의 드렸더니 너무 반가워하시며 함께 동참하시겠다는 의사를 밝혀주셨습니다.”


당황해 하던 아내와 아이들도 이내 박치영집사의 둘도 없는 지지자가 돼 주었다.

하나님을 강력한 백그라운드로 담임목사님과 가족들을 든든한 후원자로 삼아 본격적인 전도준비를 시작했다. 먼저 전국 순회 전도 차량으로 화물차량을 구입해 탑차로 특수 제작했다. 전도 방송용 시스템을 장착하고, 멀리서도 전도차량임을 한 눈에 알 수 있게 양면에 성화를 그려 넣고 조명까지 설치했다. 전도지와 함께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팝콘, 볼펜 등 다양한 선물도 준비했다. 작은 선물 하나조차도 정성으로 꼭 좋은 제품으로만 골랐다.


그러나 한 달 넘게 기도와 정성으로 준비한 여행이 첫날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이미 교회주보를 통해 성도들에게 전국 전도여행 일정을 광고하고 월요일이면 담임목사님과 함께 출발하게 된다고 일러놓은 상태. 갑자기 임신 중이던 목사님의 사모님이 임파선 결핵 진단을 받아 모두를 놀라게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도하는데 가장 중요한 탑차에 문제가 생겼다.


“제작이 완료돼 시험운전을 하는데 전기 차단기 시스템이 가동한지 5분만 되면 저절로 차단이 됐습니다. 여기저기 아무리 수소문을 하고 전기 충전량과 소모량까지 다 계산해봤지만 도무지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가볍게 넘겼던 전기 승압기 부분에서 문제의 해결점을 찾게 됐다. 결국 당일날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출발하게 됐지만, 이 또한 작은 것에도 관심이 필요하다는 하나님의 가르침으로 감사히 받아드리고 ‘빛의 사자들이여’ 찬송을 부르며 시동을 걸었다.


예수님 기억하며 힘든 사명 감당
그렇게 강화대교를 시작으로 백령도, 부산, 대구, 광주, 여수, 사천, 속초, 통일전망대 등을 걸쳐 8월 17일 제주도, 청송까지 이르는 대장정의 길을 떠났다.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 하나로 특수 제작한 라보 탑차를 타고 4개월간 전국을 순회했다. 선물을 가득 싣고 단 한 사람이라도 좋다는 열정 하나로 전국을 달렸다.


“저야 아예 회사에 6개월 휴가계를 낸 상태지만 목회를 하시는 목사님은 항상 함께하실 수는 없었습니다. 저희 교회가 워낙 인원이 적은 개척교회이다 보니 어떤 주간에는 타교회 성도가 동승하기도 하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며 저 혼자 전도의 여정에 오르기도 했지요.”

때로 폭풍우 속에서 배 멀미로 몸살을 앓고, 라보 탑차 연료가 바닥이 나 산중턱에서 기도로 겨우 산을 빠져 나오기도 했다. 차 안에서 햄버거 하나로 끼니를 때우고, 고성방가로 고발당해 파출소에 잡혀간 적도 있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무관심과 냉대에 어깨가 축 쳐져 그만 두고 싶은 적막감에 밤새 울기도 했다.



박치영집사는 그럴 때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자신의 피를 흘리며 대속물이 되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일어섰다.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주말에는 지치고 힘겨웠지만, 또다시 복음을 들고 나가는 십자가 군병의 발걸음은 언제나 성령 충만한 행진이 되었다.


“워낙 많은 사람을 접하고 새로운 곳을 다니다 보니 생각지 못한 어려움도 많이 겪었지만, 좋은 인연도 많이 만났습니다.”

서북단 끝자락 민통선에서 만난 사람은 군인을 빼면 농사짓는 몇 사람이 전부였다. 사방이 지뢰밭이고 통제 구역인 민통선. 이름 모를 농부의 손을 잡고 예수의 복음 때문에 먼 길을 단숨에 달려왔다고 하니 다들 황당해 한다.


평생소원은 ‘세계전도여행’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은 소중한 것입니다. 예수 믿고 행복하세요.” 

겨우 몇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험한 곳까지 찾아든 박집사 일행에게 순박한 농부들은 시원한 냉수 한 대접으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한다.


“제주도에 갔을 땐 정말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전도차량에서 흘러나오는 찬양과 복음의 메시지를 듣고 반가운 얼굴로 달려오신 분이 계셨는데 그분에게 뜻밖의 고백을 듣게 됐지요.”

자신의 평생소원도 전도여행이라고 고백한 제주도 섬마을의 여 집사. 언젠가는 이루게 될 자신의 꿈을 위해 매일 기도로 준비하면서도 용기가 없어 선뜻 나서지 못했는데, 박치영집사의 전도차량을 만나고 나니 용기가 솟는다고 했다.


“4월의 끝자락에 시작한 전도여행이 어느덧 한여름 8월이 되었더군요. 피서철이라 예약한 일정대로 배를 타지 못하면 몇 날 며칠을 기다려야하겠기에 여 집사님에게 우리와는 거꾸로 시작되는 제주도에서 서울까지의 전도여행길에 꼭 다시 만나자고 다짐을 받으며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지요.”

박치영집사는 자신뿐만 아니라 2차, 3차 끝없는 전도를 위해 다른 이들을 예비해두신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또 한번 놀랐다.


3월 준비 기간부터 시작해 2004년 8월 17일 제주도를 마지막으로 6개월간의 제1차 전도여행이 막을 내렸다.

6개월간의 전도 휴가를 마치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온 그는 제 2차 전국 섬 전도여행을 목표로 전도비용을 모으고, 함께 할 동역자들을 찾고 있다. 그리곤 다시 3차, 4차 북한을 넘어 실크로드를 따라 세계 전도여행 하는 것이 그의 평생소원.


“처음 개척할 때부터 ‘전도하는 교회’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시작한 담임목사님의 영향도 컸지요. 교회에서는 지금도 매 주일마다 거리청소와 팝콘전도를 하고, 토요일에는 남가좌동에있는 고센중앙교회에 전도를 도와주러 가기도 합니다. 성도 모두가 전도가 몸에 배어있지요.”


4천8백만 국민 모두가 기독교인이 되길 꿈꾸는 박치영집사. 그의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정에서 다시 올 한국교회 부흥의 그날을 꿈꿔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