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복음서(43) 그리스도의 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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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복음서(43) 그리스도의 섬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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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10.12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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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통속적 원리에 대한 처방
 

주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전에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과 나눈 대화는 마태복음(20:20-28)과 마가복음(10:35-45)에 기록되어 있는데, 누가복음에는 대화는 생략되어 있으나 이어 언급된 교훈은 기록되어 있다(2:24-27). 발생한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주님이 세 번째 수난 예언을 하신 후 야고보와 요한이 다른 열 사도 몰래 주님께 찾아와서는 주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왕권을 차지하게 되면 자신들을 그 권좌의 좌우편에 앉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들 두 형제의 이 어처구니없는 간청은 주님의 사도들 역시 아직도 주님의 메시야 신분과 사명을 바르게 인식하지 못했음을 가리킨다. 이와 같은 터무니없는 간청을 들은 후 주님은 다른 제자들 역시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간파한 후 그들의 무지몽매(無知蒙昧)를 일깨우기 위해 참 섬김이 무엇인지를 설명했다.

그것은 세상에서 통용되는 통속적 원리와는 전혀 다른 역설적 진리로, 크고자 하면 섬기는 자가 돼야 하고, 으뜸이 되고자 하면 종이 돼야 한다는 교훈이다. 그리고 그 교훈의 결론으로 주님은 제자들이 그렇게 처신해야 할 근거나 모범으로서 섬김을 받을만한 위치에 있으면서도 오히려 다른 이들을 섬기며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다른 사람들의 대속물로 내어놓은 자신의 삶을 제시하고 있다(마 20:28, 막 10:45).

한글개역에서는 막 10:45의 가르(gar), 즉 ‘왜냐하면’이 번역되지 않으므로 제자들의 처신의 근거로 주님의 삶을 제시하고자 하는 원문의 의미가 제대로 살아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본문의 의미를 살려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왜냐하면 사람의 아들이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하여, 또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대신하여) 대속물로 주기 위해 왔기 때문이다.”

한편 마 20:28은 가르 대신에 호스페르(hosper, ‘~와 같이’)를 사용해 주님의 삶을 제자들의 처신의 근거보다는 원리 혹은 모범으로 제시하고 있다. “사람의 아들이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 또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을 위해(대신하여)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 온 것과 같이.”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왕으로, 스승으로 섬기는 자들은 마땅히 그분의 삶, 즉 말씀과 행동을 행실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 주님의 삶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표이자 목적이 돼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다스림과 섬김의 세속적 원리를 분명 다르게 인식해야 한다.

세상의 집권자들과 대인들은 휘하 사람들 위에 군림하여 그 권력과 권세를 자신의 목적과 이익을 위하여 휘두르지만, 그리스도를 좇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 권력과 권세로써 자신보다 약한 이웃을 받들어 섬기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지도자란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섬기는 자인 것이다(Leadership is Servantship). 과연 오늘 우리는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들 아래서 섬기고 있는가? 오늘날 교회의 많은 문제 중 하나는 이러한 섬김의 결여에서 비롯되고 있다.       


/교수·천안대 기독신학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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