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년대, 청년 소현세자의 ‘신앙과 삶’ 역사적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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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대, 청년 소현세자의 ‘신앙과 삶’ 역사적 조명
  • 현승미
  • 승인 2005.09.29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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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9일부터 한 달간 CTS 아트홀 … 한국기독교 120주년 기념공연 ‘흔적’

우리나라에 기독교를 전파한 이들은 언더우드를 비롯한 외국의 선교사들로 알려져 있다. 그들 선교사의 흔적 또한 전국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미 1600년대에 우리나라 사람에 의해 기독교가 전파됐다는 흔적이 발견됐다.


360년 전 물설고 낯선 이억 만 리에서 8년간 꿋꿋하게 조선의 비전을 준비하여 성경과 과학서적을 안고 귀국한지 2달 만에 거룩한 십자가의 보혈로 피 흘려 순교한 위대한 신앙의 선각자 청년 소현세자. 그의 신앙과 삶을 기독교 역사적 시각으로 재조명한 ‘흔적’이 오는 10월 29일부터 다음달 20일까지 CTS 기독교TV 아트홀에서 공연된다.


이 작품은 1637년 청나라가 조선을 침공하고 조선의 16대왕 인조가 삼전도에서 청태종에게 무릎 꿇고 왕자 세 명을 청의 수도 심양으로 볼모로 보내는 등 수난의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640년대에 들어 청나라는 명나라를 치기 위해 조선군 3만 명 파병을 요청한다. 그러나 조선의 소현세자는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고 있는 조선에서 3만 명이나 되는 대군을 파병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청태종에게 맞선다. 이에 심양에 있는 조선인으로 군대를 편성하며 스스로 정명군의 선봉에서 참전하는 조건으로 청의 파병 요구를 거절했으나, 1644년 명나라가 파멸하고 만다. 폐허가 된 명의 수도 북경에서 소현세자는 독일 선교사 아담 샬을 만나고 그에게서 서구 과학에 대한 많은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소현세자는 그러한 지식보다 더 중요한 기독교에 대해 알게 된다.


1645년 조선의 한양으로 돌아온 소현은 조선의 개혁과 개방 개종을 시도하지만, 아버지 인조를 비롯한 궁중의 수구세력들은 그의 개혁 물결을 수용하지 않는다.


특히 백성들이 기독교로의 개종을 원치 않는다. 인조는 아들 소현세자에게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기독교에 대하여 배교를 강요하고, 부왕의 명령을 거부하는 소현세자 앞에 죽음이 다가온다. 소현세자가 사망한 후 세자빈 강씨도 곧 그의 뒤를 따라 사약을 마시고 세 아들도 죽는다.


이 작품의 극본을 쓴 이반장로는 “85년도 선교 100주년 행사 때 서양 외국인 선교사들이 아시아에 복음을 전달하는 ‘빛의 길을 따라’라는 작품을 하면서, 대학시절 한국인이 기독교를 가져온 경우를 작품화 해야겠다고 결심했다”며 이 작품의 탄생배경을 설명했다.


또한 작가는 일본, 중국, 러시아 그리고 미국 등의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어려운 외교관계 그리고 더구나 남, 북한으로 분단된 현 조국의 현실을 당시 조선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시기 상황과 유사하게 보고 있다.


이반장로는 “16~7세기의 조선과 21세기의 한반도의 상황은 다르지만 민족, 이념, 국가주의라는 이익집단들 간에 벌어지는 경쟁의 구조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며, “이 작품은 하나님의 어떠한 표적, 어떠한 사인으로 보이는지 드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국기독교 12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이 공연은 (사)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가 주최하고, 극단예맥과 CTS 기독교TV가 주관하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국민일보, 극동방송이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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