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애·사회정의 실현 두가지 모두 충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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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애·사회정의 실현 두가지 모두 충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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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9.2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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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제도 폐지’ 과연 성경적으로 옳은 것인가?



정일웅 교수<총신대학교>


사형제 폐지 주장은 사형 집행이 살인행위와 동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제도적 살인이라고 주장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인도주의적인 관점에서 사형수의 인권을 생각하면 그런 논리가 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살해당한 자의 인권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주장이다. 하나님은 사형수의 생명권만을 생각하지 않고, 살해당한 자의 생명권도 동일하게 귀한 것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적인 시각에서 보면 하나님은 처음부터 인간을 그의 형상으로 만드시고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전제하여 생명을 파괴하는 살인을 엄격히 금지했던 것이다. 성경에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이 그것이며 또한 살인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도록 명하신 것이 바로 그 뜻이라고 본다(창 9:6, 출 21:12, 민 35:31).

그리고 이와 같이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한 자들의 행위를 판단하는 권한은 처음부터 정의 실현 차원에서 공동체의 지도자에게 부여됐고, 오늘날은 정부 당국과 특히 사법부에 맡겨진 것으로 이해된다(롬 13:1~4).


왜냐하면 그러한 정의가 공법으로 다스려지지 않을 때 사적인 복수로서의 살인이 저질러지기 때문이다. 비록 사형제도가 보복적 차원으로 이해되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정의 실현과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기독교는 세상 정부가 하나님과 인류를 대적하는 흉악한 일을 도모하지 않는 한 그 정부의 통치를 인정하며, 하나님은 그의 뜻을 시대마다 실현해 간다고 보는 것이 기독교의 정치관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살인행위와 국가의 사형제도를 살인으로 동일시 여기고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소리는 단순히 범행자의 인권에만 치중한 나머지 생명을 빼앗긴 피해자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를 간과한 ‘인도주의’적인 감상주의로 보여진다.

문제는 사랑과 정의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서로 공동체의 정의실현과 상처 치유를 위해 서로 병존관계에 있는 것이지 그 어느 편에 종속관계로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두 가지의 병존은 신학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까지 지상에서 긴장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사랑의 윤리에 근거해 사형수 개인을 사랑할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공법은 공법으로 준수돼야 한다. 공법의 집행은 하나님은 악인을 벌할 권세를 재판관에게 부여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개인적인 윤리는 원수도 사랑하고 사형수도 사랑해야 하지만 국가의 공법은 공의로운 형벌을 집행해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정의를 실천해 가야 할 하나님의 뜻이 부여된 일이다.

필자는 사형수의 인권과 생명의 존엄성을 존중해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인도주의적인 입장에 깊은 동정을 가진다. 하지만 그 사랑이 사형제를 폐지할만큼 공법에 적용되거나 공법의 토대로 해석하는 일은 무리라고 본다. 물론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의 다수가 인권과 화해와 사랑에 대한 가치 인식이 성숙해 국민 60% 이상이 종교적으로 성화의 정도에 이르게 됐다면 사형제도의 폐지는 쉽게 성취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한국 교회도 여전히 사회의 형벌 인식의 정도나 수준을 넘어서 있지 않은 것으로 이해되며, 설사 사형제를 종신구금제로 바꾼다 해도 일생을 여전히 구금상태에 머물러야 하는 억압된 신분은 더 혹독한 인권 유린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사형제 존치가 오히려 인간애 실현과 사회정의 실현의 두 과제를 충족시키는 하나님이 제시한 올바른 해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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