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라는 이름이 주는 컴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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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라는 이름이 주는 컴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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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8.23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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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광재 목사<백석대학 학장>


‘디히트리히 본훼퍼’는 나치 독일에 대한 저항자로서 독일의 유명한 신학자다. 그는 ‘인간이 자유라는 점에 있어서 창조자를 닮았다’라고 하여 “인간은 자유로운 존재로 하나님과 교제가 가능하게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니라”(골 3:10).

아담과 여자의 관계는 매우 자유로운 관계이며, 이원화될 수 없는 유기적인 관계다. “그들은 이미 남남이 아니었다. 하나이며 그리고 둘인 것이다. 둘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미 깊이 잠든 아담에게 하신 행위에 의해서 창조하신 그 자체이다”라고 본훼퍼는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그들은 기원에서부터 하나였다. 따라서 하나가 됨으로써 비로소 그들은 그 기원에 돌아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자라는 이름도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고 아담이 고백했다. 이 사실이 하나님의 창조 원리요 뜻이다. 그런고로 여자의 존재 가치란 남자의 존재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바꾸어서 말하면 여자의 아름다움은 남자에 의한 것이며 또한 남자의 존재란 여자의 존재에 의해서만이 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성경에서는 머리와 지체로 설명했다. 그런데 ‘하와’라는 위치를 오늘 여자들이 다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와’는 범죄한 여자가 진정으로 자기 자신의 불법의 행동에 대한 고백이 없이 핑계로 에덴동산 밖의 세계에서 다시 얻은 명칭이다.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자의 어미가 됨이니라”(창 3:20). 그 후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오늘날 여자들에게는 ‘하와’라는 개념이 잠재되어 있는 그 때부터 여성 해방이라는 이론이 부각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와’라는 이름이 주는 불안 요소와 혼돈되어지는 원인이라고도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와’라는 이름의 컴플렉스가 무엇인가? 욕구불만에서 벗어나고 싶은 충동을 주고 있는 것이다.

가죽옷을 입은 실감 있는 그리스도의 구속적인 사실을 이해한다면 원래의 모습인 여자로 곧 본질로 돌아가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마르다는 밖에서 열심을 내고 잘해 보려는 데서 오는 컴플렉스에서 이론이나 비판이 나타난다고 한다면 자기의 원래의 자리를 알고 있는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 있음에 대한 무 이론과 무 반응에서 진정한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핑계대고 자신이 감당하여야 할 십자가를 회피하려고 할 때 오는 인간적인 방법론이나 기교가 우리를 얼마나 불안하고 불행하게 하는 것인가 우리는 체험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도 상대적인 모습에 따라 나의 행동이 정해지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 모른다.

무화과 잎으로 가리는 데 능숙해진 우리가 분주하게 뛰어다녀도 우리 마음에 기쁨이나 평안을 체험할 수 없는 이유가 태양에 말라버리는 무화과 잎만을 붙들고 있는 까닭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그 헛수고의 손을 놓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가죽옷으로 갈아입을 때 우리는 진정 평안과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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