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르트가 쓴 ‘로마서 주석’에서 20세기 신학은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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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가 쓴 ‘로마서 주석’에서 20세기 신학은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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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5.28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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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신학
▲ 조병하 교수

20세기 동안 다양한 흐름 속에 있는 모든 프로테스탄트교회의 사상을 특징짓는 보수적-민족적 보수주의 정신은 1차 세계대전에서 분기점을 이루는 경험에 직면하여 점점 더 놀라운 현상으로 발전 되었다. 그리고 계몽주의, 합리주의에 대한 반대, 시민계층의 자기만족적 삶과 낭만주의적 삶에 대한 반발에 대한 내적인 저항은 전쟁 후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항하여 계속된 투쟁으로 나타났다.

알브레히트 리츨의 신학, 특별히 그의 제자 빌헬름 헤르만의 신학은 1차 세계대전 이후 모든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흐름의 공동의 토대이었다. 이들 신학의 중심 개념들은 “윤리”와 “문화”이었다. 또한 20세기에 변증법적인 신학 및 “위기의 신학”의 출발은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와 더불어 칼 바르트(1886-1968)가 1918-19년에 쓴 ‘로마서 주석’에서 20세기 신학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칼 바르트가 1919년 스위스 아르가우 지방의 농민과 노동자들의 교회의 목사가 되었을 때 그는 전쟁 전의 신프로테스탄트-자유주의 신학에 각인되어 있었다. 사회문제와 직면하였던 그는 종교사회주의로 기울어 있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은 그로 하여금 종교이데올로기와 종교사회주의에서 떠나게 하였다. 그의 친구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1888-1974)과 함께 자유주의 신학에 등을 돌리고 오직 성서 본문에서만 그의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았다. 그리고 그가 설교 임무에 직면하여 강력하게 성경에 몰두함으로써 ‘로마서 주석’이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초판)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의 항목은 1919년 9월 25일 탐바흐에서 행한 강연 “사회속의 그리스도”에서 분명해졌다. 그의 중요한 신학변화는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이시다”에서 나타났다. 즉, 그것은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도교의 문화유산들로부터의 전향을 의미하고 그리스도에게로 방향을 돌리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리고 사람에게서 전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안에서 스스로를 계시하였던 하나님에게로 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소위 모든 그리스도교적인 운동들을 통해 그것의 힘과 의미들이 죽은 자들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안에서 드러났던 하나의 운동 “위로부터 수직으로”가 뻗어나간다. 이러한 운동은 소위 ‘그리스도교-사회의, 그리스도교-국가의, 그리스도교-윤리의’와 같은 주장들의 부정을 의미하였다. 바르트는 그리스도교의 윤리 종교와 함께 이러한 운동 “위로부터 수직으로”에 저항하는 것이 죄악이라고 비판하였다. 1922년 완전히 새롭게 개정하였던 그의 ‘로마서 주석’ 2판이 출판되었다.

이미 이러한 새로운 조항에 역시 덴마크의 죄렌 키에르케가르트(1813-1855)의 사상, 러시아의 작가 표도르 미하힐로비치 도스토옙스키(1821-1881)등이 앞서갔던 자들이었다. 그리고 바르트와 투르나이젠의 변증법적인 신학에 루터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비슷한 통찰에 이르렀던 프리드리히 고가르텐(1887-1967), 신학의 불행이 무엇보다도 프리드리히 다니엘 에른스트 슐라이에르마허(1768-1834)에 책임이 있다고 보았던 에밀 부르너(1889-1966), 신학성서의 역사적 연구로부터, 그리고 변증법적인 신학을 위하여 종교개혁의 신학, 특별히 루트의 신학을 재발견했던 루돌프 불트만(1884-1976) 등이 속한다.

이들은 19세기 계몽주의, 합리주의, 이신론, 자유주의 등에 영향을 받은 신학들이 크게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대학 강단의 신학들”이 자신들의 설교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에 자극되었다. 변증법적인 신학자들은 ‘하나님과 인간’, ‘계시와 이성’, ‘교회와 문화’ 등이 서로 합쳐지거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대치되고, 모순되고, 대조되는 관계에 있음을 지적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시와 인간적인 요소들의 관계를 긍정적인 상호관계로 보지 않고 긍정과 동시에 부정을 함께 보는 변증법적인 신학을 전개함으로써 19세기 자유주의 신학과 구분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신학이 루터교적 그리고 칼빈주의적 정통주의와도 다름을 밝힘으로써 신정통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바르트는 성경에 대한 자유주의적 비평태도를 여전히 취함으로써 코르텔리우스 반 틸(1895-1987)에 의하여 ‘새로운 현대주의’라고 평가되었다. 바르트가 ‘오직 그리스도 안에 계시’를 주장했던 것에 반해 브룬너는 그리스도교 계시의 중요부분으로 ‘창조계시’ 즉, ‘자연계시’를 더욱 강조한다. 불트만은 초기에 바르트에게 영향을 받았으나 자신의 신약연구를 위하여 역사 비판적 연구방법을 따르며,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마르틴 디벨리우스(1883-1947)와 함께 양식비평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바르트의 변증법적 방법론을 역사에 적용한 사람으로 ‘루터의 십자가의 신학’을 집필한 발터 폰 뢰벤니히(1903-1992)를 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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