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육신적 교회(Incarnational church)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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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육신적 교회(Incarnational church)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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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4.08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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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적 교회 시리즈21 - 송기태 선교사 (인터서브 코리아 교회 관계팀)

주님의 성육신과 교회의 성육신의 의미 :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신 핵심적 방법을 우리는 성육신(incarnation)이라고 부른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이 말씀에서 주님의 성육신 의미를 두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한 가지는 성육신을 통하여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하셨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람들 가운데 거하셨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핵심적 전략을 나타내 주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우신 교회 공동체도 동일하게 주님의 성육신적인 의미를 그대로 반영해야 하지 않을까? 지상에 존재하는 교회를 성육신적 관점에서 본다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 타입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고립적 교회 : 가장 보편적인 교회의 형태이다. 이런 교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자 됨에 대한 신학은 큰 문제가 없다. 대부분의 신학이 건전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지역 사회 가운데 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모든 교회들은 다 지역 사회 가운데 위치해 있지 않은가? 그렇다. 교회들이 지역 사회에 위치해 있지만 문제는 교회들이 지역 사회와 거의 소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오셨지만 유대인들과 소통하지 않으셨다면 어떤 결과가 빚어졌을까?

교회가 고립적 형태를 띠는 이유는 이원론적인 신학 때문이다. 즉 교회 모임은 거룩하지만 교회 밖은 위험하고 타락한 세상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따라서 위험한 세상을 향하여 무엇인가를 하려면 종교적 전문가들이 관여해야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이러한 교회들은 위치해 있는 지역 사회에 복음적 영향력을 거의 미치지 못하게 된다.

혼합주의적 교회 : 이 형태의 교회는 고립적 교회와는 대조적으로 지역 사회 주민들과는 활발히 소통하지만 문제는 복음을 가지고 나아가기 보다는 인권과 사람들의 필요에 초점을 맞춘다. 더 나아가서 지역 사회에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전하기 보다는 인본주의적 관점에서의 인간화를 추구한다. 엄밀히 말해서 이러한 교회들을 주님의 교회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교회 가운데 주님의 주권이 너무도 희박하기 때문이다. 이런 교회들에게 가장 시급히 요구되는 것은 교회 가운데 복음이 선포되고 복음의 기초가 바로서는 것이다. 이런 교회들은 세상에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지만 복음적인 영향력은 거의 미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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