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쓴 물을 생수로 바꾸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상태바
마음의 쓴 물을 생수로 바꾸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 운영자
  • 승인 2013.01.18 18: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경직 교수의 십계명에서 찾아낸 그리스도인의 삶 (22)

                                          새로운 ‘문화 명령’

▲ 백석대 조직신학
하나님께서는 마라의 쓴 물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응답을 받을 때에는 기뻐 뛰며 감사했지만 거절 받은 것처럼 보일 때에는 불평하고 하나님을 떠나고자 했다.

그들에게는 아직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마라의 쓴 물 앞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그들의 자아가 아직 시퍼렇게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하고 평가하는 이집트식 사고방식이 그들에게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통해 무엇을 의도하시고 원하시는가를 물어볼 여유가 그들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마라의 쓴 물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달지 않고 쓰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이 마라의 쓴 물을 보고 먹을 수 없는 물이라고 불평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쓴 마음을 보시고 불평하지 않으셨다. 그들의 마음이 쓴 마음에서 단 마음으로 바뀌기를 원하셨다.

이스라엘 백성 스스로 자신들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집으라고 지정하신 막대기를 통해 마라의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쓴 뿌리로 가득한 마음을 지니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먼저 생수를 먹이심으로써 그들이 갈증에서 벗어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먼저 생명을 주셨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에서 쓴 뿌리가 빠져나가도록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셔서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가실 때 먼저 하시는 일은 그들이 자신들의 마음에 있는 쓴 물을 발견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8)는 문화명령을 주셨다.

그러나 뱀이 그들을 시험했을 때 그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있던 연약함이 드러났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 받은 피조물로서 살아가는데 만족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과 같이’되고 싶어 했다(창3:5).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들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고 싶어했다. 그들은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고 싶어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생각과 판단으로 대체하고자 했다. 그것이 바로 죄였다. 하늘을 바라보지 않아도 되는 삶, 스스로의 힘으로 꾸려나갈 수 있는 삶, 그 삶은 이집트에서 꿈꿀 수 있는 삶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이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없이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자유롭게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그들은 그들에게 혼돈과 어두움만 가져다주는 이집트 왕 파라오의 압제 밑에서 노예로 살아야 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이 열심히 일한 대가가 그들에게 돌아오리라 기대했지만 그들의 노동은 이집트인들을 배불리는데 사용되었다. 그들의 수고는 혼돈스러운 세상에 참된 평화를 가져다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버려두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의 죄와 수치 때문에 두려워하는 아담과 하와에게 그들의 죄와 수치를 가릴 수 있는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창 3:21). 그들은 여전히 죄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아담의 노동은 수고와 땀을 동반해야 했으며, 하와의 출산은 고통을 동반해야 했다.

하지만 그 노동을 통해 가정이 유지되고 출산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내려오는 혈통이 유지되었다. 아담과 하와는 비록 온전하지는 못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할 특권을 얻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압제 아래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건져내셔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동참할 기회를 주신다. 이제 그들의 노동과 출산은 이집트인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것이다. 그들의 출산은 하나님의 자녀들로 이 땅을 채우라는 하나님의 문화명령을 성취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그들의 노동은 그 자녀들이 생명을 유지하여 다음 자손을 낳도록 하는데 이바지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도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마28:19)는 예수님의 대위임령에 순종해야 한다. 이는 자기중심적 생활방식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고자 하는 하나님의 자녀를 새로 낳아서 온 땅을 채우라는 새로운 문화명령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