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사회윤리와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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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사회윤리와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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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5.26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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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엽 목사<기독교학술원 이사장>

제13회 기독교학술원 학술대회가 '기독교 영성과 사회윤리'라는 주제로 종로 백주년 기념관 소회의실에서 최근 열렸었다. 박봉배, 안봉호, 이영훈, 김종혁 박사 등 사회 저명한 인사들의 심도 있는 발제와 김명혁, 주도홍, 정일웅, 차영배 박사의 논평이 있었다. 이들의 주장을 크게 보면 결국 하나님의 사랑에 입각한 윤리관이 확립 되어야 한다는 취지로 요약할 수 있다.

하나님은 그 존재양식부터 사랑에 입각한 관계(삼위일체적 사랑)라는 관점에서부터 그 분이 창조한 인간도 역시 사랑에 입각한 관계이기 때문에 인간 사회의 기본 존재양식은 사랑의 관계 안에서 해석하고 적용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우리가 반드시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해석만이 아니고 경험적 유추에서 해석하더라도 인간 사회는 사랑이라는 윤리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이런 사랑의 관계에서의 사회윤리 해석의 난점은 특별히 정치관계에 이르면 복잡해진다. 정치는 타협이며 협상이고 조정이기 때문인데 여기서 간만의 차이로 불의의 경계를 넘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 사회의 윤리는 정치만이 아니라 사회, 경제, 문화, 국제, 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윤리관이 어떻게 수립되어야 하며 어떻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은 기독교적 입장에서의 초미의 문제들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윤리관이 확립이 된다 하더라도 실제적 현장에서의 적용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 보면 부정 부패, 불의한 타협과 협상, 상호의 이익을 위한 불공평과 속임수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문제에 봉착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착안해야 할 문제는 사회의 일원으로써의 기독교 시민의식의 확고성이다. NGO 수준에서의 고발이나 시정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여기에서 비로소 신앙의 영성이 문제가 된다. 영성이란 여러 가지로 해석 되지만 지속적 관계영성이란 의미에서 규정되어져야 한다. 상태적 개념이나 해설적 영성 개념으로는 사회윤리의 시정이나 확립은 요원하다. 성경과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체험해야 한다는 말씀을 언제나 강조하셨다. 하나님을 체험한다는 것은 물론 성령을 체험한다는 말이고 성령 체험은 곧 그리스도 예수가 내 마음속에 이루어진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가 내 마음속에 이루어진다는 것은 어떤 일시적 경험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시적 경험은 곧 지속적 경험이 되어져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요 14:7에서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으면”이라고 말씀을 하시면서 지속적 관계영성을 강조 하셨다. 우리는 인간성 자체가 연약하고 분별력이 약해서 칼날 같은 하나님의 의에 서기가 어렵다.

이런 내 안에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나를 이기고 사회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늘 기도하며 늘 묵상하는 인격 속에는 절대로 실패하거나 또 불의와 타협할 수 없는 법이 살아 있기 때문에 자유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기독교 교인이며 이 진정한 교인은 사회의 일원으로 있을 때에도 빛이 나는 것이며 그 사회의 현실을 바꿔놓기도 한다. 이들이 곧 요셉이며 다니엘이고 에스더 들이다. 이들은 사회윤리를 개혁했고 하나님의 의와 공평과 평등을 실현하는 개체적 기독교 사회윤리의 정당한 실천 신앙이었다. 그들의 영성은 하나님과의 지속적 영성이었으며 계속적 관계의 신앙이었다.

오늘 한국에서의 사회윤리의 기독교적 의미는 결국 영성의 올바른 관계 확립 내지는 행사에 있다고 하겠다.
한국 교회의 올바른 영성의 제고는 한국 사회의 올바른 사회 윤리의 기틀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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