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은 가장 과학적인 것이 신앙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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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은 가장 과학적인 것이 신앙적입니다”
  • 최창민 기자
  • 승인 2010.03.10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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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와 성실함으로 정상의 자리에 오른 봄바니에 대표 장준영 장로

모두 가난에 허덕이던 1950년대 유독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던 봄바니에 대표 장준영 장로(여의도순복음교회·이영훈 목사). 전남 순천의 작은 산골마을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대장장이였던 아버지의 일을 도왔다. 쌀 한 톨 얻을 수 있는 땅이 없을 만큼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대장간에서 연장을 많이 두드릴수록 우리는 먹고 살 수 있었다”고 말한다.

# 아버지의 참외를 통해 배운 사랑
그런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시장에 연장을 들고 나갔다. 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연장을 메고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던 중, 길가에 진열돼 있던 참외가 눈에 들어왔다. 가난했던 집안 형편에 참외는 흔히 맛볼 수 없는 그야말로 귀한 과일이었다.
그런 아들에게 아버지는 “이놈아, 앞을 보지 않고 한 눈을 팔면 넘어지는 법이다”며 모진 말로 걸음을 재촉하셨다. 서너 걸음 옮기다가 인기척이 없어 뒤를 돌아본 그는 참외 상인과 흥정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됐다.

“여보시오. 자식 놈이 참외가 먹고 싶다는데, 그 중에서 가장 덜 상한 것으로 싸주시오.”
날이 저물고 장터를 마칠 때였다. 멀쩡한 참외도 몇 개 남지 않았지만, 개중에 상한 것을 주지 않으려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그는 사랑을 느꼈던 것이다.
“이때 배운 사랑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이 정도라면 하나님의 사랑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는 어려서 만났던 아버지의 사랑을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랑의 기억을 통해 지금껏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을 키워갈 수 있었다.

지난 39년 간 고급 정장과 웨딩드레스를 만들어 온 장준영 장로가 처음 바느질을 배운 곳은 정수직업훈련원(현 서울정수기능대학)이었다. 1960년대 정부가 빈곤층의 취업을 돕기 위해 설립한 이곳은 그의 삶에 있어서 큰 전환점을 가져온 곳이 됐다. 양복 일을 배우면서 훈련원 앞에 있던 작은 양복점에서 일을 시작했다.

1971년 코스모스 양복점 재단사로 취직했다. 6년뒤 회사를 직접 인수해 20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양복점 운영에 나섰다. 그러나 그는 첫 사업부터 큰 위기에 봉착했다. 지인으로부터 인수 받은 양복점이 실은 큰 빚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제 한달 월급이 3만5천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갚아야 할 빚은 8백만 원이 넘었어요. 당시 집 한 채 값이 50만원이었으니, 감당할 재간이 없었죠.”

한달 넘게 건물 주인을 쫓아다니며 만나 통사정을 했다. 그리고 기도로 하나님께 매달렸다.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 하나님이 ‘모든 일이 잘 해결됐으니 어서 일어나 출근하라’고 하셨어요.”

그날 아침 그는 건물주와 재계약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한 권사님의 권유로 교회에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지만, 그 때 이후 주일에 교회를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됐죠.”

# 섬세함과 세련됨으로 웨딩 문화 선도
이후 그는 1984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고급 양복점을 운영하며 성공 가도를 달렸다. 꼼꼼하고 성실한 그의 성품 덕분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지금은 정·재계 유력 인사들의 단골 양복집으로 성장했다. 이미 배우 전도연, 골프선수 최경주 등 유명 인사들의 턱시도와 드레스를 만들고 있다.
또 섬세함과 세련된 디자인, 무엇보다도 정밀한 치수 분석을 통해 입기 편한 옷을 만들기로 유명한 그는 유수의 호텔과 예식장에 수제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납품하며 크게 성장했다.

특히 그는 한국적인 웨딩문화 정착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고급 웨딩숍을 운영하면서도 가격 거품을 줄여 실비로 예복을 맞출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평생에 단 한번 입는 웨딩드레스와 턱시도입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내로라할 만한 국내 브랜드가 없어서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지난 2005년 설립한 웨딩 전문숍 ‘봄바니에(Bom boniere)’는 이제 유명 브랜드가 됐다. 봄바니에는 특별한 파티에서 초대한 손님들에게 오랫동안 기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선물이란 뜻을 가진 이탈리어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습니다. 양복을 잘 맞게 입으면 사람이 달라 보입니다. 옷은 한 사람을 초라하게도 만들 수 있고, 세련되고 품위 있는 사람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는 옷을 주문 받으면 옷을 만들기 위해 패턴을 뜨면서부터 기도를 시작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옷을 만드는 심정으로 일한다.
“옷이 잘 맞으려면 치수와 재단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체형을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옷을 만드는 과정만은 과학적으로 하는 것이 가장 신앙적이고 양심적인 것입니다.”

이 때문에 그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체형을 부위별로 촬영해 측정할 수 있는 기구와 시스템을 개발했다. 세밀하고 섬세한 옷을 만들기 위해 손님은 체형까지 공개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한다. 다른 수제 양복점에서는 볼 수 없는 진풍경이 벌어지는 것이다.

5층 전층을 사용하고 있는 토털 웨딩숍 봄바니에는 남산 소월길 중턱에 위치해 있다. 데이트 코스로도 안성맞춤인 이곳은 복잡한 도심 속에 숨겨져 있는 경관을 자랑한다. 쇼윈도우에 전시된 웨딩 정장은 이 길을 지나치는 결혼을 앞둔 남녀 커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지금 ‘봄바니에’는 유명 연예인들이 결혼식 때 웨딩화보 촬영을 할 정도로 유명해졌다. 주변 경관도 아름답고 내부 시설이 잘 돼 있어, 각종 드라마 촬영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다.

# 신앙의 모델 “목사님, 코디 해드려요”
“정직하고 신성한 결혼 문화를 선도하기 위해 웨딩숍에 대한 비전을 갖고 장소를 물색하던 중 이곳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일 일찍 예배를 드리고 남산을 따라 땅 밟기를 하면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장준영 장로는 이곳에 웨딩숍을 세우기 위해 수년 전부터 ‘땅 밟기 기도’를 했다. 돈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믿음으로 이곳을 돌며 기도한 것이다. 1994년부터 3년여를 여리고성을 돌듯이 한주도 거르지 않고 기도했다. 당시 얼마나 그곳을 열심히 돌았던지 여관 건물이 있어 간혹 “쉬다 가세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1997년 드디어 땅을 살 수 있게 됐다. 믿음으로 바라보고 기도했던 결과 하나님이 그 땅을 허락하신 것이다.
그는 롯데백화점에서 신우회를 조직하기도 했다. 백화점, 호텔의 특성상 주일에도 쉬지 않고 업무를 봐야하기 때문에 주일 성수가 쉽지 않다.

그는 신우회 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었다.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예배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교회에서 뿐만 아니라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도 전도할 수 있고 영적인 교재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신우회 회원들과 함께 성경공부 모임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에 대해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또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로 섬기면서 1970년대부터 조용기 원로목사의 양복을 맞춰왔다. 매주 강단에 서시는 목사님들에게 정장은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이 때문에 그는 목사님들의 옷에 대한 관심도 남다르다. 이를 위해 한국 교회 목사님들을 위한 나눔을 준비하고 있다.

“주일에 목사님들은 모델이 됩니다. 신앙의 모델이 되기도 하지만,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는 옷을 잘 입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매주 무대에서 옷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목사님들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그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제공하고 싶다고 말한다. 목사님들에게는 마진을 거의 남기지 않고, 기성복을 구입하는 가격으로 수제 와이셔츠와 넥타이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목사님들도 체형과 얼굴에 따라 스타일에 맞는 코디가 필요합니다. 우리 가게에서 옷을 맞추지 않아도, 언제든지 문의해 오시는 목사님이 있으시면 무료로 코디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장 장로는 아무런 부담 없이 연락해달라고 강조했다. 그는 KBS에서 수년간 출연자들의 옷을 코디네이션하기도 했다.

이런 달란트를 통해 한 영혼을 귀하게 여기면서 힘들게 사역하고 있는 전국 각지에 있는 형편이 어려운 목사님들을 돕고 싶어하는 것이다.

얼마 전 그는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을 보던 중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장 장로는 “김연아 선수는 갖은 노력을 통해 어린 나이에도 남들이 쫓아 올 수 없도록,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며 “옛날의 나에서 나오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나도 이 분야에서 메달리스트가 되겠다는 심정으로 새롭게 다짐하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제일 가는 웨딩숍을 넘어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그의 의지와 열정이 빛나는 대목이다.

맨 손으로 주님만을 의지한 채 오직 열정 하나로 정상의 자리에 우뚝 선 장준영 장로. 받은 만큼 하나님 사역을 위해, 주의 종들을 위해 아낌없이 내어주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그는 앞으로 하나님의 더 큰 사역에 쓰임받는 비전을 품고 있었다.

▲ 봄바니에 3층 피팅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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