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속 인물:최인규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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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속 인물:최인규 권사
  • 승인 2005.01.1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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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사 속 인물 : 최인규 권사 <1881-1942>

우상숭배 반대 외치다 결국 옥중 순교 

채찍 맞아가며 똥통 들고 모멸감 수치 당해 


일제의 신사참배를 단순히 식민지 우상화 정책이라고 요약하기에는 우리나라 신앙인들의 피해가 너무 컸다. 한국의 복음화를 넘어 동북아시아로 뻗어나갈 기독교복음은 숱한 신앙인의 순교로 멈칫하며 수 년 동안 억압상태에 있었다. 이런 시기, 감리교 최인규 권사 역시 우상화정책에 반발한 적지않은 애국신앙인 가운데 포함돼 있었다.



천곡감리교회에 출석하던 최인규 권사는 1940년대 더 심각해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대해 “우상숭배는 할 수 없다”고 외치다가 결국 체포됐다고 한다. 당시 경찰서장은 최 권사에게 똥통을 지우게 하고 “나, 최인규는 신사참배를 하지 않았다”고 외치며 돌게 하고는 뒤에서 채찍을 후려 쳤다고 한다.


이런 소식을 들은 최 권사의 친구로, 삼척교회 권사면서 울진교회에서 전도사일을 맡아보던 차국성 권사는 급히 경찰서장을 만나 “최인규는 원래 정신병을 앓고 있었는데 교회에 나가면서 조금 호전되고 있으니 석방시켜 달라”고 애원했으나 서장은 오히려 “예수를 믿으려면 최인규처럼 믿으시오, 당신이 정신병자요!”라고 호통을 쳤다는 말이 전해진다. 경찰서장 역시 최 권사의 신앙을 인정한 셈이다.


함흥재판소에서 최 권사는 자신의 신앙소신을 떳떳이 밝히며 천황도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간다고 외쳐 천황모독죄가 추가돼 2년 징역을 선고 받았다. 감옥에 이송된 최 권사는 신사참배를 거부한 죄목으로 잡혀온 이진구목사를 만나 감옥에서 합심기도, 찬송을 부르며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너무 소란스럽게 하자 교도소측은 사상범교화를 주로 담당하는 대전교도소에 이들을 송치했다.


하지만 최 권사와 이진구 목사는 자신의 신앙소신을 더욱 강하게 밝힐수록 심해지는 고문의 고통을 감수해야만 했다. 교도소측은 “공연히 고집부리지 말라, 식구들을 생각해 보아라, 빨리 만나서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회유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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